10년 뒤인 2027년.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해안 절경은 5000세대 가까운 대단지 아파트에 입주한 이들만 누리는 특권이 됐다. 금정산 자락 금강공원에는 부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관광단지가 조성됐다. 2020년 7월 이기대 전체면적 193만 ㎡ 중 130만 ㎡, 금강공원 309만 ㎡ 중 101만 ㎡가 사유지로 풀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다. 앞으로 3년 뒤면 '공원 일몰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가 2020년 7월까지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묶인 사유지를 매입하지 못하면 녹지가 개발 가능한 용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기대공원 193만 ㎡ 가운데 사유지는 66%(130만 ㎡)에 달한다. 공원은 43만2000㎡이고 나머지는 방치돼 왔다.

각종 환경 이슈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일몰제다. 새 정부 출범 후 미세먼지와 4대강 수질 대책은 착착 마련되고 있지만 일몰제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부산시는 고육책으로 민간공원특례제 시행 카드를 꺼냈다. 민간사업자가 사유지를 모두 매입해 70%를 공원으로 조성해 기부채납하면 나머지 30%의 개발을 허용하는 제도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70%의 공원이 30% 개발지의 조경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벌써 이기대에 5000여 세대 대단지 아파트나 호텔·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제안서를 내놓는 사업자가 폭주하고 있다.

딜레마다. 당장 민간특례제를 통한 이기대 개발을 허가하지 않는다 해도, 3년 뒤면 70% 공원까지 지키지 못하고 공원 전체가 사유지로 풀려 난개발될 수 있다. 청사포공원이나 함지골공원, 부산 유일의 동물원이 있는 어린이대공원 등 유명 녹지 공원 대다수가 이런 딜레마에 처했다. 시는 내년부터 매년 600억 원, 3년간 1800억 원을 마련해 사유지를 사들인다는 계획이지만, 전체 매입금(2조 원 상당)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기대 사유지 매입에만 공시지가로 1197억 원이 드는데 예산이 없다.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상황이다. 지자체 힘만으로 풀 수 없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선되면 일몰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또 일몰제 해결을 전담할 정부 부서 신설과 1인당 생활 녹지 9㎡로 확대 등을 공언했다.

이를 위해 ▷공원일몰제 연기 ▷국가 차원의 사유지 매입 ▷관련 법 개정 등을 검토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20년 전국의 명산과 명승지가 사라진다. 깨끗한 공기를 주는 허파인 숲이 병드는 재앙이 닥친다.

사회1부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