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18㎞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정동진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다. 조선 시대 경복궁의 '정(正) 동쪽에 자리한다'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정확한 위치를 측정해보니 정동진과 위도가 같은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서울의 도봉산으로 밝혀졌다. 진실이야 어쨌든 정동진은 장엄한 일출에 비해 워낙 한적한 어촌인지라 오랫동안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정동진이 상전벽해를 이룬 건 TV 드라마 때문이다. 1994년 큰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의 촬영지임이 밝혀지면서 한순간에 전국 명소가 됐다. 손님이 거의 없어 한때 여객 취급을 중단했던 정동진역은 새마을호 열차가 정차하는 번잡한 역으로 탈바꿈했다. 반면 현지인 중에는 이 같은 변화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개발 가속화로 정동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TV 드라마로 인해 유명해진 곳은 경남에도 있다. 거제시에 자리한 '바람의 언덕'이다. 부분적으로 잔디가 덮인 민둥산이나 사방으로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만큼 전망이 좋다. 2000년대 접어들어 '이브의 화원' '회전목마' 등 이곳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널리 입소문이 났다. 전문 여행가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명소'에 포함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이 거제의 명소가 최근 존폐의 위기에 내몰렸다. 내막인즉 그동안 재산권을 일정 부분 침해당한 땅 주인이 대안으로 요청한 편의시설 건립이 시로부터 거부당하고부터다. 이에 지주는 관광객의 출입을 막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시는 땅 주인을 설득해 사유지인 이곳에 풍차와 탐방로 등을 설치해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날벼락을 맞은 쪽은 멋 모르고 이곳을 찾은 이들이다.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느닷없는 출입통제에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재산권 침해와 공공성은 늘 충돌하게 마련.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바람의 언덕'에 편의시설 건립 허가를 내주려니 난개발이 두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사유재산권 행사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제시와 지주가 팽팽히 맞서다 보니 어떤 결론이 나올지 누구도 모를 일. 그래도 대다수는 이곳이 계속 지역 명소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을 터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