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면 무릎을 치게 되는 기발한 신조어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을 다 만들었을까 싶은 그런 말들. 요즘 그런 것 중 하나가 '내로남불'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말이다. 네 글자다 보니 한자로 이루어진 사자성어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다. 진짜 사자성어 '아전인수'와 비슷한 의미이긴 해도 똑같진 않다. 어쨌거나 신조어 '내로남불'은 나름대로 위트가 넘친다. 발음 또한 착착 감긴다.

어쩌면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고 모드가 180도 변하는 그런 본성 말이다. 예를 들어 운전대를 잡고 자동차를 몰 때 우리는 운전자의 시각에서 사고한다. 이때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는데도 느긋하게 걷는 보행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이 급한 상황이라면 그 보행자를 향해 경적을 울려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전대를 놓고 자동차에서 내려오자마자 우리는 보행자 모드에서 사고하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등이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보행자에게 빵빵거리는 운전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 나고 자동차 났지 자동차 나고 사람 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와 야가 뒤바뀐 정치권에서 '내로남불'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이 신조어가 주는 맛깔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정치 기사에서 이 표현을 보는 것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고위공직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와 야가 서로에게 이 표현을 퍼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새 정부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높은 고위공직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지 않았느냐며 역시 '내로남불'로 맞받았다.

추경과 관련해서도 '내로남불' 논란은 계속되었다.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 법적 요건에 못 미치는 추경을 밀어붙인다고 비판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 경기가 어려울 때는 더불어민주당이 추경을 외면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법적 요건에 문제없는 추경을 놓고 야당이 '묻지마 반대'를 하고 있다며 받아쳤다. 정권이 바뀌고 입장마저 뒤바뀐 양측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형제가 싸우는 걸 목격한 부모가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형이 의젓하지 못하게 동생과 싸운다며 형을 혼낼 수도 있고, 동생이 감히 형에게 대든다며 동생을 혼낼 수도 있다. 물론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일이라며 형제를 똑같이 혼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대처법은 따로 있다. 부모는 형제 중 누가 어떤 잘못을 얼마만큼 한 것인지 따지고 판가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누구를 어느 정도 혼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대처다. 그래야 형제에게 억울함을 남기지 않는다.

어쩌면 언론이 여야의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처법은 '양비론(兩非論)'이다. 싸움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양측을 모두 나무라는 방식이다. 하지만 양비론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최근 여야의 '내로남불' 논쟁은 "너도 나랑 똑같이 나쁜 × 아니냐"고 서로 삿대질을 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누가 '로맨스'이고 누가 '불륜'인지 따져서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만약 둘 다 '불륜'이라면 누구의 '불륜'이 더 심각한 것인지를 면밀하게 따져서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 둘 다 똑같다"며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운전자일 때와 보행자일 때 한 사람의 사고 모드가 180도 바뀌는 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서로 '내로남불'을 외치는 정치인들이 나름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론이다. 언론은 '내로남불' 논쟁의 중계자나 수수방관자로 전락해선 안 된다. 정치보도에서 양비론은 가장 공정하지 못한 태도다. 더군다나 가장 무서운 건 국민에게 정치에 대한 냉소나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를 뽑아도 정치판과 정치인은 어차피 모두 더럽다는 부정적 인식이 퍼진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국민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정치를 관찰한다. 언론의 정치보도가 그만큼 중요하다.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