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상황 점검 차 개최도시인 평창과 강릉을 찾은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새 정부의 평창올림픽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방하며 중요한 제안을 하였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단일 종목 참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자 아이스하키의 단일팀 구성 등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을 강조하는 만큼 북한의 참여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최근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라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는 긴장 완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예전의 탁구나 축구 단일팀이 이루어낸 성과와 감동을 다시 한 번 재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절차나 출전자격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선수들을 먼저 생각했다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는 국가 대표팀이 한국의 유일한 팀이다. 1998년 5월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처음으로 결성된 이래, 19년이 지나도록 정규 팀(실업, 대학, 고등, 중등, 초등)이 하나도 창설되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를 통해 진학과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빙판 위에서 젊음을 불사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표팀 선수들은 중학생, 피아노 전공 음대생, 의대생,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전공과 상관없이 순전히 평창올림픽만을 위해 모이고,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이다. 국내 정규 팀이 존재하지 않는 탓에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스파링 파트너'가 없어 남자 중고교 팀을 상대로 '성 대결'을 펼쳐 실전 감각을 유지해야 하고 여자팀과의 연습 경기를 위해 1년에 두 차례 장거리 해외 전지훈련에 나선다. 해마다 진학과 취업 등 현실에 가로막혀 정들었던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이 나온다.

그러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018 평창 올림픽 본선에서 '불가능'에 도전하겠다는 투지를 잃지 않고 매일 태릉빙상장에 모여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단일팀이 꾸려진다면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는 선수는 오랜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절차와 논의가 생략되고 선수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이번 발언은 남북 화해의 무대로서의 평창올림픽이라는 좋은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원론적으로 스포츠와 정치는 올림픽이 대중화되고 냉전 시대를 거치며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왔다. '개인 수련의 장'이 '오락화된 신체활동'으로 바뀌고 올림픽을 만나 '국가 또는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경쟁 무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올림픽 성적은 국가 경제력과 상당히 비례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5공화국 시절 위정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올림픽과 프로 스포츠를 도구화한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스포츠를 이권의 도구로 사유화하려다 재판을 받고 있다. 스포츠에 정치적 이념을 덧칠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의 인공기 게양을 막기 위해 전체 국가의 국기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정권이 바뀌어 대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무조건 북한을 참여시키려 하는 것도 똑같은 발상이다. 더는 스포츠를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은 새로 취임한 도 장관의 앞선 의욕이 빚어낸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고 올림픽에서는 정치색 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정당하게 실력만으로 겨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를 통해 국민은 대리만족을 얻으며 온전히 승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스포츠. 이것이 스포츠를 즐기는 기본원칙이 되는 세상은 아직 요원한 것일까?

부산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