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일본 센다이시의 한 아파트에서 중2 남학생이 뛰어내려 숨진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 자살로 처리되었으나, 부모가 이지메(왕따)로 인한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며 재조사를 요구하였다. 학교 측은 부인했지만 계속되는 문제 제기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이지메가 있었으며 자살 전날에는 2명의 교사로부터 체벌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살한 학생의 부모는 학교 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분개하였다. 이후 학교 측은 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사과를 받은 부모는 “당신들이 비록 사과는 하고 있지만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해당 학교 측의 사과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 방식과 묘하게 겹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자살한 학생의 부모는 책임 있는 당국자와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다. 사과는 가해자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받아들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만 한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진상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핵심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가 있다.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합작 영화로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을 영화로 한 작품이다.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책 한 권과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책의 저자 프라두가 포르투갈의 독재자인 살라자르에 항거한 존경받는 의사이자 유명한 시인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살하려던 여인은 살라자르의 하수인으로서 수많은 민주 운동가를 고문했던 ‘리스본의 도살자’ 멘데스의 손녀딸임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할아버지가 악명 높은 고문 전문가였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과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범죄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그 방식은 원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히브리식 우주적 도덕법칙을 배경에 깔고 있다. 할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죽음으로 참회하겠다는 여주인공의 자세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 진정한 사죄를 구한 그녀에게 정의로운 용서가 허용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바치는 심정으로 대한민국에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
지난 7월 28일 자 국제신문은 역사를 외면한 일본의 언론매체가 영화 ‘군함도’를 반일감정만 자극하는 창작물로 소개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27일 자 신문 1면 머리기사로 군함도 개봉 소식을 전하면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담지 않았다고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동해를 일본은 일본해로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구글 지도 영어판에는 ‘일본해(동해)’로 명기되어 있다. 괄호 속의 동해를 보면 우리의 이름을 빼앗긴 느낌이다. 한 바다를 공유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2개의 이름으로 갈 수는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일본이 진정한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상징적 의미로서 우리의 동해를 화해(和海, Sea of Peace)로 함께 칭할 수 있지 않을까?
화해(和海)는 우리말 화해(和解)와 발음이 같고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본다. ‘和’는 사전적 의미로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가 되다’이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연일 동해에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북한을 보더라도 하루속히 화해(和海)가 되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이 동해를 화해(和海) 바다로 부를 수 있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지금 일본의 태도를 보면 아직 요원한 것 같아 72주년 8·15 광복절을 앞두고 씁쓸한 마음이다.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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