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의 최대 국영 해운사인 코스코가 홍콩 선사 OOCL을 무려 7조 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인수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같은 초대형 인수 작업을 바탕으로 240만 TEU 이상의 선복량을 보유하게 된 코스코는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에 이어 세계 3위 선사로 우뚝 서게 되었다.

세계 1위 선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머스크 또한 독일 선사인 함부르크 수드를 40억 달러에 인수하여 선복량을 380만 TEU까지 늘렸고, 일본 해운 3대 선사인 NYK MOL K라인도 올해까지 각사의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완료해서 선복량 135만 TEU의 세계 6위권 선사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각국의 글로벌 대형 선사는 대규모 인수 합병(M&A)을 통한 이른바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노선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에는 2만 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까지 재개하면서 선복량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1년에 발생한 세계 해운 시장 내 치킨 게임의 여파로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경쟁 선사 퇴출에 자신감이 붙은 대형 선사들이 더욱 강력한 치킨 게임의 양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대응해야 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현재 국내 최대 선사인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약 45만 TEU로 머스크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독자 생존이 가능한 100만 TEU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난 3월 본 계약이 체결된 2M(Maersk, MSC)+현대상선의 전략적 협정은 앞으로 3년의 계약 기간 동안 주요 노선의 신조발주까지 제한하고 있어 당분간 선대 규모의 확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입장에서 해운업은 단순한 서비스업이 아니라 국가의 수송 인프라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다. 덴마크, 일본, 중국 등의 경쟁국들은 이러한 해운업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했기 때문에 대출, 토니지 뱅크(선박 은행), 보증 및 기금 등 다양한 방식의 선박 금융 지원을 통해서 자국을 대표하는 대형 국적 선사들의 경쟁력을 계속 확대시켜 왔다.

그렇다면 국내 해운업 재건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가장 먼저 진행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칭)의 조속한 설립을 통해 국적 선사가 100만 TEU 이상의 ‘초대형 선사(Mega Carrier)’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공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자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고 이를 통해 발주된 선박을 국적 선사에 빌려주게 되면, 선사는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구축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의 출자와 손실 보전을 전제로 하는 공사의 등장은 선박금융을 기피하고 있는 민간 은행들의 투자 참여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금융 위기 이후 장기간 침체되어온 국내 선박 금융 시장을 다시 정상화시킬 수 있는 유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해운사의 자발적인 폐선 유도는 신조 발주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 중 하나로 폐선 보조금과 대체 건조보조금 지급 등이 있다. 보조금 지원을 통해 노후 선박들을 친환경 신규 선박으로 바꾸게 되면 해운경쟁력 구축과 조선소 일감 확보의 상생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국내 해양산업 지원과 관련해서 정책 금융 기관과 공사의 역할 분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여전히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업과 중견 해운 선사 지원은 기존의 해양금융시스템이 안정적인 지원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롭게 설립될 공사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자는 물론 국내외 항만시설 투자 등 국적 원양선사의 대규모 선대확충 및 사업기반 확대를 위한 투자에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운업은 화물 하역 및 운송, 선박 금융, 선박 관리 및 수리, 해운 중개 등 다양한 업종과 연계해서 발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선업이나 건설업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익의 차원에서도 해운업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는 산업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한진해운의 상실로 입은 엄청난 상처는 지울 수 없으나,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해운업계가 같이 힘을 합쳐 해외 대형 선사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초대형 국적 선사를 이른 시간 내에 만들어야 한다. 해운업 재건을 위한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해양보증보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