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의료계에는 환자를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환자 만족도를 올리기 위한 친절교육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지만, 참석자는 원무 행정 간호부 소속 직원들이 주를 이루었다. 강사들 또한 병원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의료시설 못지않게 의사는 진료 역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 외의 직종은 친절 서비스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환자 만족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최근 의료계의 화두인 환자중심 의료와는 아직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올해 7월부터 환자들이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등 입원 중에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의료진과 병원을 평가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바로 ‘환자 경험평가’인데, 조사는 상급종합병원 또는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하루 이상 입원했다 퇴원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형화된 질문을 하고 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설문은 모두 24개 문항으로 ▷의사·간호사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투약과 치료과정에서의 경험 ▷병원 환경에 대한 만족도 ▷환자권리 보장 여부 등이 담겨있다. 전통적으로 의료서비스는 제공자 즉 의사나 병원 중심의 서비스였다.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환자들이 참여하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 제도를 주관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환자 경험평가가 향후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의료 질 향상은 물론 성숙한 의료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란 말 그대로 환자가 의료서비스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즉, 환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환자가 의사결정 과정에까지 참여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서구 선진국에서는 환자 중심 또는 환자 참여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만족도 이야기가 있었고 이제는 환자 경험평가를 시행하는 나라가 되었다. 패러다임의 빠른 변화다. 환자 중심 의료는 시설의 투자, 의료 서비스의 전문화, 환자 1인 진료 확대로 인해 병원의 재정적 부담 등 당장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환자 경험평가는 아직 도입단계이고, 세부항목 기준이 주관적인 요소가 많은 점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의료서비스 향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고 병원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환자 중심 의료는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환자 경험평가는 환자 중심 의료로 가는 과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번 환자 경험 조사결과를 가지고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하나 환자 경험평가를 단순히 병원 서비스의 서열화를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병원의 전반적인 서비스 질의 개선이 아니라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등의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환자 경험과 환자 만족은 환자가 진료와 관련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느끼는 주관적인 개념이기에 평가 초기에는 지표들을 더욱 객관화하고 평가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더욱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직원들의 친절함과 환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나 제도는 이전과 다르게 변화해왔다. 이러한 개선 노력이 환자 중심 서비스 중의 진료 외적 부분에 대한 발전을 가지고 온 것이라면 이제는 진료 서비스의 본질을 개선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환자 경험조사가 잘 정착이 되어 진정한 환자 중심 의료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