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골 의사였던 제너(1749~1823)는 과학적으로 제조한 최초의 백신을 탄생시켜 의학 분야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목장에서 일하는 소녀가 우두에 감염되자 그녀의 농포로부터 시료를 채취해 8세 소년에게 접종하였다. 두 달 후 소년에게 치사량의 천연두를 접종하였는데, 다행히 소년은 죽지 않았다.

제너가 운이 좋았던 이유는 우두 바이러스와 천연두 바이러스의 표면구조가 매우 비슷해 우두접종을 하면 우두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천연두에 대해서도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나타난 미생물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천연두는 최초로 예방접종을 통해 소멸된 질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두 바이러스처럼 치명적인 질병과 유연관계가 깊으면서도 무해한 병원체는 많지 않다.

백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파스퇴르(1822~1895)에 의해 비로소 시작되었다. 예방접종에 이용되는 백신은 주로 톡소이드나 사균 백신 또는 약화된 생백신이다. 백신의 원리는 병원균을 죽이거나 약화시킨 것 또는 병원균 일부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 결과 몸 안에서는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는 항체를 분비한다. 일단 높은 수준의 항체가 분비되면 질병에 대한 영구적 혹은 비영구적인 저항이 생긴다.

병원균이 생산한 독소인 톡소이드에 포르말린 혹은 열처리를 하여 독성을 중화시킨 뒤 인체에 주입하면 독성은 없으면서 면역반응을 유발한다. 파상풍 백신과 디프테리아 백신이 여기에 속한다.

콜레라, 소아마비, 장티푸스 백신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화학적으로 사멸시킨 사균 백신이다. 콜레라 백신은 병을 일으킬 수 없지만 중화된 콜레라독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면역을 유발할 수 있다.

약독화 병원균을 이용한 약화된 생백신은 풍진과 홍역 예방접종에 이용된다. 병원균을 충분히 약독화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 단점이 있다. 면역이 억제된 사람들에게는 잠재적으로 질병을 야기할 수 있고, 때로는 병원균이 다시 생기거나 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다. 몇몇 미생물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발달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임신부는 약화된 생백신 예방접종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도 약화된 생백신은 1회만 투여해도 장기적인 면역을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85년 이후 생명공학적으로 제조된 백신이 사람과 가축에게 이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박테리아 세포 또는 바이러스 자체를 포함하고 있으나, 실제로 면역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특정 단백질 또는 단백질 일부가 필요하다. 이러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효모 또는 박테리아에 옮김으로써 많은 양의 백신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예방접종의 신기술로 백신 관련 유전자를 가진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식용식물 안에서 항원을 생산하면 백신주사 없이 특정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바나나, 감자, 토마토와 같은 식물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식용식물 백신을 개발하였다. 특히 바나나는 백신으로서 완벽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섭취하면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대부분 얻을 수 있고, 어린이들에게는 이유식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나나를 요리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열은 백신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백신을 함유한 식물이든 요리하지 않은 채 먹어야 한다. 이 기술이 널리 사용되면 많은 질병과 백신주사에 대한 사람들의 고통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질병을 발생시키는 수많은 병원체는 숙주의 방어체제를 피해 다니면서 효과적인 백신의 발달을 방해하고 있다. 따라서 백신에 의한 면역반응 증대, 특정한 질병에 대항하는 백신의 개선과 새로운 개발,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백신 개발 등 좀 더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효력 있는 백신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적으며 특이한 질병에 대한 영구적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백신은 가격 면에서 저렴하고, 유효기간이 길며 안정한 것, 관리하기 좋은 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인제대 문리과대학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