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남 김해 시내 곳곳에는 붉은색 바탕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김해시민 다 죽이는 신공항 결사반대’ 등의 글귀에서 결기와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공항의 소음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한 해프닝으로 인해 ‘불길에 기름 끼얹은 격’으로 변했다.

지난 5월 김해공항을 통제하는 공군이 자체 사정을 이유로 항로를 변경했다. 김해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대개 김해시청 위를 지나 임호산 상공에서 서울 또는 제주·동남아 방향으로 비행한다. 공군은 원활한 작전 수행을 이유로 민간항공기 항로를 기존보다 오른쪽으로 5도 틀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소음이 작았던 내외동과 북부동 등 도심 복판까지 소음권역으로 바뀌었다. 시청에 소음 민원이 빗발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김해시와 지역 국회의원까지 중재에 나서면서 항로는 3개월 만에 원위치 됐다. 이즈음부터 시민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소음 공포를 체험한 시민들이 공항이 확장될 경우 김해 전역이 ‘소음 공장’으로 변할 수 있다며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또 지난 8월 말 국토교통부가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한 주민설명회가 모두 무산됐다. 급기야 신공항건설 반대주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시민 홍보전이 시작됐다.

우려되는 것은 김해지역에서 이 문제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쟁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소속 시·도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장이 공항 소음 문제에 대해 입장이 불분명하다며 성토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박근혜 정부 때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했는데 이제 와서 웬 책임 전가냐”며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수십 년간 항공기 소음 고통에 시달려온 김해시민 입장에선 공항 건설 백지화 요구가 결코 과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실제 해당 지역 주민의 불편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암동과 부원동 주민 중에는 난청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상적인 생활 유지마저 어렵다는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책사업을 백지화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신공항 문제는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여서 쉽게 접근할 문제도 아니다. 여타 대안이 없는지 찾아보는 열린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최근 김해시가 국토교통부에 소음 방지를 위해 신규 활주로를 ‘남해고속도로 아래쪽에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건의문을 낸 적이 있다.

관련 전문가인 인제대 박재현 교수는 “남해고속도로를 지하화하고 신규 활주로를 그 위에 3~4㎞ 길이로 설치하면 활주로가 ‘V’자가 아닌 ‘11’ 자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항공기가 김해시내가 아닌 신어산 상공을 지나가게 돼 소음이 감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태도 역시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과거처럼 주민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오히려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무조건 따를 것을 종용하기보다는 고통받는 시민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주민 이주나 현실적인 보상책 등 대안을 제시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지역 정치인들도 ‘서로 네 탓’만 할 게 아니라 당리당략을 초월해 김해시 백년대계를 위한 솔로몬의 지혜를 찾을 때다.

사회2부 부장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