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면의 계절이다. 수험생은 수험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시기가 왔다. 다음 달 16일 치러지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20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비고사 세대든, 학력고사 세대든, 수능 세대든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의 무게는 어느 때나 가벼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독 수능 세대에게 마음이 아픈 건 수험생 자녀를 뒀던 부모로서 개인적 경험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인생 선배로서 수능 세대가 지독히도 불행하다는 연민에서다.
수능은 암기 위주와 많은 수험 과목 등 학력고사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1994학년도부터 시행됐다. 통합 교과서적 소재를 바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 위주로 출제되는데, 수험생의 선택권을 넓히고 출제 과목 수는 줄여 입시 부담을 덜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입시 부담을 덜어준다는 데 웬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수능 도입과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난 입시 전형에 대한 부담이다. “대학 들어가는 데 시험만 잘 치면 되지”라고 말하면 고루한 ‘꼰대’라고 할까 봐 강조하지 않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 전형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이상적인 입시제도라고 큰소리쳤던 수능의 기형화를 촉발한 것은 수시 전형의 확대다. 단순히 수능 성적만 갖고 대학에 진학하는 정시와 다른 수시 전형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특정 분야에 재능을 가진 아이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그럴싸한 논리로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박탈감과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수시 모집은 초기 특기자전형이나 특별전형 중심으로 입학 정원의 10% 이내만 선발했으나 대학의 입김이 세지면서 2018학년도 대입에서는 모집 비율이 73.4%까지 확대됐다. 신입생 4명 중 3명을 수시로 선발한다. 서울대 등 이른바 명문대는 그 비중이 더 높다. 현재 고교 2학년이 치를 2019년도 대입의 수시모집 비중은 76%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시험 성적만 갖고 원하는 대학 가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수시 전형, 특히 요즘 대세라고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정성(精性) 평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합격이나 불합격 전망 자체가 도통 깜깜이다. 합격한 학생도, 떨어진 학생도 “내가 왜 합격했지” “내가 왜 떨어졌지”를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수시 전형의 수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세분화하면 총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대학별로 다 다르니 고3 선생님들도 혼란스럽다. 예전에는 진학 지도를 고3 담임교사에게 많이 의존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요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녀 문제로 고3 담임교사를 만나고 온 학부모들은 “담임교사가 너무 소극적이고 심지어 방관적이다”며 불평한다. 담임교사들은 수시 전형의 방대함과 불가측성 앞에 감히 자신있게 제자들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겠다는 투다. 이게 지금 일선 학교의 현실이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시장 논리는 당연히 수요자 중심이 우선돼야 하는데 대입 시장은 공급자인 대학이 ‘슈퍼갑’이다. 대학은 학생 선발권 확대라는 이름으로 수시 전형의 무차별적인 확장을 초래했다.
그렇다고 수시 전형이 기회 균등 차원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다. 수시의 절대 비율을 차지하는 학교생활기록부(교과+종합) 전형은 내신관리는 기본이고 비교과활동 스펙과 자기소개서 등 준비해야 될 게 너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수시 마인드’가 없는 학부모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다. 그래서 여유 있는 부모를 둔 ‘금수저 전형’이라 불린다. 실제 지표에서도 이런 사실은 확인된다. 입시에서 학생부 중심 수시모집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일반고 출신 신입생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올해 서울대 등 서울지역 주요 10개 대학의 신입생 중 일반고 출신 학생의 비율은 55.3%로 전년(56.2%) 대비 0.9포인트 줄어드는 등 매년 감소폭이 뚜렷하다. 이처럼 사회적 박탈감과 양극화를 가속시키는 대입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마침 지난 5월 선거를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입시제도 개편을 공약했다. 골자는 대학입시를 ‘학생부 교과 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수능 전형’으로 단순화하며 수시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대학에서 기회 균등 전형을 의무화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의 약속은 이른 시일 내에 실행돼야 한다. 특히 수시 모집 축소는 대학 눈치 보지 말고 과감히 실행하길 기대한다. 합격한 사람이야 왜 걸렸는지 몰라도 합격했으니 괜찮다고 치자. 불합격한 수험생은 뭐가 부족해 미역국을 먹은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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