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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일상이 된 위기, 리더십의 위기 /박무성

북극 도전 스테팬슨처럼 파국 재촉하는 리더 많아

남극 탐험가 섀클턴의 비전·자기희생 본받아야

  • 국제신문
  • 편집국 선임기자 jcp1101@kookje.co.kr
  •  |  입력 : 2017-11-16 19:41:00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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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서바이벌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어니스트 섀클턴의 탐험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가 네 번의 도전에서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섀클턴은 1914년 8월 대원 27명과 함께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세 번째 남극탐험에 나선다. 하지만 배가 남극해역에 닿자마자 빙벽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기를 634일, 그를 포함한 인듀어런스호 선원 28명은 영하 30~40도의 혹한과 굶주림을 견디고 전원 구조돼 고국으로 돌아왔다.

인듀어런스호가 남극으로 출항하기 1년 전,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20명의 캐나다 탐험대는 북극을 향해 칼럭호의 닻을 올렸다. 출발은 순조로웠으나 이들 탐험대는 북극의 빙벽과 맞닥뜨려 완전히 고립됐다. 1년 뒤 섀클턴이 맞게 된 똑같은 장면이었다. 당시 극지 탐험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정반대였다. 스테팬슨의 대원들은 야수처럼 변했다. 부족한 식량과 연료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했으며, 먼저 구조되려고 서로를 속이면서 분열했다. 결과는 참극이었다. 불과 3개월여 만에 대원의 절반이 넘는 11명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극과 극으로 벌어진 결과를 두고 사람들은 선장인 섀클턴과 스테팬슨의 리더십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섀클턴은 예일대 데니스 퍼킨슨 교수의 강의와 책으로 명료하게 정리돼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리더로서 섀클턴과 스테팬슨의 역량은 애초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을까. 스테팬슨 역시 당시에는 극지탐험을 나설 정도의 실력을 가진 탐험대장이자 선장으로서 자격은 최소한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스테팬슨과 섀클턴의 갈림은 리더십이 얼마나 디테일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평소 같으면 구분조차 못한 채 넘어가는 덕목이 극한상황에서 극단의 양상을 빚어낸 것이다.

스테팬슨이 놓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리더로서의 언어. 공포에 질린 대원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겠으나 그는 거짓말을 했다. ‘구조대가 오고 있다’든지, ‘빙벽을 뚫고 나갈 돌파구를 찾겠다’는 등등. 선의의 거짓말조차 상황이 악화될수록 사람들 사이에선 신뢰를 깨는 도끼가 됐다. 스스로 말을 삼가지 못하는 리더가 소통채널을 원활하게 관리하기는 어렵다. 자기과시적인 허풍, 상황변화를 핑계 삼은 식언이나 말 바꾸기도 큰 범주에서는 거짓말이다. 이런 언어는 구성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교감을 차단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연대보다 각자도생의 균열을 불러온다.

두 번째는 비전의 부재. 칼럭호나 인듀어런스호 어느 쪽 대원인들 살고싶은 욕망이 달랐을 리 없다. 그러나 한쪽은 살기 위해 동료를 챙겼고, 다른 한쪽은 동료를 희생시켰다. 도덕성 때문인지 규칙이나 제도 때문인지 논란이 있겠지만, 리더십의 문제로 푼다면 리더의 비전이 방향을 가른 듯하다. 섀클턴은 1914년 탐험 이전에 두 번의 시도가 있었다. 처음은 로버트 스콧 탐험대의 일원으로 가담했다 괴혈병에 걸려 중도 탈락했고, 1909년에도 남극점 정복은 실패했다. 섀클턴의 리더십은 역설적으로 이런 실패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세 번째 실패 또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야 할 목표가 있었던 리더와 오로지 여기를 벗어나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의미였던 사람이 맞이한 결과는 판이했다. 실제 인듀어런스호 대원 상당수는 6년 후 섀클턴이 네 번째 남극탐험에 도전했을 때 다시 합류했다.

세 번째, 자기희생이다. 헌신이라면 너무 무겁고 동료에 대한 양보,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섀클턴은 배가 조난당하자 선장에게 주어지던 특식부터 없앴다. 심지어 그는 균등하게 배급되는 식사용 비스킷을 동료 대원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대원은 이런 일기를 남겼다. 북극의 스테팬슨은 사냥감을 구한다는 핑계로 대원 몇몇만 데리고 탐험대를 빠져나간다.

국가 차원이건 우리가 속한 조직의 틀에서건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는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파국을 재촉하는 최악의 리더도 많다. 위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렇다. 1920년 봄 섀클턴은 우여곡절 끝에 네 번째 남극탐험을 시도했다. 옛 동료들은 예전의 전설적인 리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섀클턴은 ‘실패한 탐험가의 성공한 리더십’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리더십의 궁극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정신 내지 가치의 추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진정한 리더십이 매우 드물고 소중한 이유다.

편집국 선임기자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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