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사무실의 위층은 체육과 학생들이 수업하는 강당이다. 20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학생들의 에너지는 대단해서 늘 건물 전체가 흔들리듯 존재 증명을 했다. 그날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사무실은 꿀렁꿀렁했는데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뛰고 굴리네. 건물 내려앉겠다.” 누군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두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경고음을 냈다. 다들 한소리로 “어, 지진이다”고 소리쳤다. 경북 포항에 지진이 왔다. 전국에 진동이 있었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그 흔들림을 공유했다.

다음 나온 얘기는 “그런데 원전은?” 다들 원전의 안위를 물었다. 작년 경주 지진 이후로 원전은 구체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고리5, 6호기의 건설 재개로 부산 시민이 맞는 원전의 위협은 배가되었다. 그런 데다 잦은 지진으로 그 위협은 실제적 감각의 세계로 들어온다.

서울 가는 기차를 탔다. 동대구역까지 평소보다 10분이나 늦게 통과했다. 포항 지진 때문에 특정 구간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이 나의 일상에 포함되었다. 수능이 연기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일부 불만과 우려는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이 그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포항의 수능생들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월호와 직면하고 촛불혁명을 지켜온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안전과 배려의 키워드가 우리 사회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고 민감한 부분인 수능이라는 영역에서 발현되었다. 소수자의 의견과 이해는 다수의 진행 방향을 위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결정을 단행한 쪽도 받아들인 국민들도 마음이 한 뼘쯤은 자란 것 같다. 그렇게 대견해하고 있는 즈음에 기울어진 아파트, 그 아파트가 투자 대상으로 인기가 좋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허물고 재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돌려받는 문제가 쉽지 않다는데,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다시 반 뼘 후퇴했다.

지진이 현행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체계에 변화가 생긴다. 외형의 번듯함, 규모의 거대함에 못지않게 토대와 기본에 대한 강조가 의식에 근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감각의 영역으로 체감하면서 정형화되고 물화되어 있던 우리의 의식이 유연화되고 있다. 일회적 삶의 유의미성, 일상의 소소한 가치, 현재적 삶의 소중함을 새기며 나의 그것이 귀한 만큼 타인의 세계도 존중하기로 한다. 무너진 학교, 액상화로 꺼진 땅, 기운 아파트 등 훼손된 것들은 신속하게 복구 되어야 하고, 한반도의 지진대에 대한 과학적 분석, 지진에 대한 디테일한 매뉴얼 등이 제도와 행정의 영역에서 빈틈없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땅이 흔들린 김에 생각해볼 일이다. 원전은 비용이 저렴하며 효율이 높고 안전하다는 일방적인 논리가 무너지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 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인 구습과 아집, 맹목의 자리가 흔들린다. 흔들린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가 조금씩 들어온다. 우리는 괜찮다고 하는 근거 없는 낙관 대신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현상 앞에 겸허한 태도를 배우게 된다. 알 수 없는 세상, 다만 짐작으로만 알 뿐인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는 존재의 외로운 상태를 받아들인다. 대개 속수무책의 지경이 되는, 깊은 우주 속의 한 점 사람됨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조금 젖어온다.

김장철이다. 올해는 초부터 정신없이 바쁘더니 결국 동생들과 함께 김장하는 시간도 맞추질 못했다. 고맙게도 셋째 여동생이 내 것까지 챙겨서 해주었다. 올해 김장김치 맛을 아직 보지는 못했다. 원추리나물에 돌미나리, 두릅과 엉개나무의 설명할 수 없는 맛, 시장을 무심코 지나다가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산 싱싱한 민물새우의 매끈한 맛, 속이 불편할 때 물에 만 밥 위에 올려 먹는 갓 김치의 코끝에 걸리는 알싸한 맛은 변함이 없다. 먹고 만지고 냄새를 맡던 화평한 감각에 흔들림이라는 공포의 느낌이 선연하게 새겨졌다. 확장된 감각.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