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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심플한, 화가 장욱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07 19:19:5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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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화가 장욱진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세종시에서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화가 장욱진이 1917년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에서 태어났으니 아마도 그러한 연고로 그의 작품들이 고향을 찾았을 것이다. 한편 내가 사는 곳 인근인 경기 양주시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있다. 그곳에서 먹그림과 도자기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미술관에는 장욱진의 먹그림 30여 점 그리고 윤광조 신상호 등 도예가들과 함께 협업해서 제작한 도화(陶畵)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작품을 장욱진 스스로 먹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림을 그려보라며 아내에게 먹과 벼루를 직접 사주기도 했다. “먹은 딱 장소가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정해졌어요. 그러니까 새벽에 맑을 때. 먹그림으로 그린 거지. 재료를 먹으로 했다뿐이지. 그건 내 체질에 맞아. 가령 내 도화도 똑같아요. 그것이 내 체질에 맞기 때문에 한 거예요.” 장욱진은 먹그림을 통해 주로 불교의 선(禪) 사상을 표현했다. 그림의 내용도 미륵불, 절, 심산(深山), 새, 심우도, 수행자,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존귀하다”라고 외치는 부처 등을 그렸다.

이러한 먹그림 화풍의 배경에는 화가의 아내가 독실한 불자였던 것도 다소의 영향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장욱진 화가는 아내가 불교 경전을 외는 모습을 보고선 깊은 인상을 받아 아내를 부처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그림의 제목을 ‘진진묘’라고 붙였다. 진진묘는 아내의 법명이기도 했다.

미술관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작품은 올해 화가의 장남이 양주시에 영구 기증한 ‘가족도’(1972년 작)였다. 장욱진은 가족의 풍경을 많이 담았던 화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가족도’도 아주 단순한 구도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과 애틋해하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 그림의 양편 끝에 두 그루의 푸른빛 나무가 균형을 맞춘 듯 서 있고, 지붕 위로는 네 마리의 새가 열을 맞춰 날고 있고, 낮은 지붕의 집에는 네 명의 식구가 서로 붙어 서서 바깥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식구들의 얼굴은 둥글둥글하고 원만했다. 바깥 공간의 채색이 붉은빛인 것으로 보아선 아마도 석양 무렵의 가족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특히 집의 공간을 마치 위에서 내려본 듯이, 조감도처럼 평면적으로 분할하고 있는 그 안정된 구도가 고유하고 좋았다.

장욱진은 세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 살면서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던 예술가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한 때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곤 생애 대부분을 덕소, 명륜동, 수안보, 용인 마북리 화실에서 살았다. 방문을 열어놓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사진을 나는 언젠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진 속에 있던, 그가 댓돌 위에 벗어놓은 흰 고무신 두 짝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장욱진은 1963년부터 경기 남양주 덕소에 있는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실 생활을 했다. 미술관에는 덕소화실 벽에 그려져 있던 벽화를 가져오되 벽을 통째로 그대로 옮겨와 설치해놓고 있어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벽화에는 윗부분에 소의 코뚜레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는 마치 아이가 그린 듯이 보일 정도로 천진한 선(線)이 돋보이게 가축들을 그려놓았다. 이 작품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만 유일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장욱진의 그림은 간략함에 있다. 간략하게 대상과 세계를 표현했지만 가볍거나 단조롭지 않다. 단순함 속에서도 풍부함과 충만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가령 나는 그의 그림 가운데 ‘독’이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나무는 작게 그려져 있고, 둥그런 독은 크게 그려져 있고, 독은 겉면에 금이 생겼고, 독 앞에 까치가 한 마리 앉아 있다. 나는 이 단순한 그림을 보며 시간, 어머니, 땅과 생명, 까치를 맞는 날의 기쁨 같은 것을 느낀다.
이처럼 그의 그림의 여백에는 맑음, 정겨움, 움직이는 생기, 공생의 살림, 조화, 자유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진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그가 스스로 말했을 때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그림의 간략화를 일컫는 것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기 삶의 절제, 진솔함, 소박함 같은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장욱진의 화실은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그는 거기에 그의 고독과 함께 살았다. 집을 짓고 생활했던 아틀리에의 공간은 한 평 남짓 되는 작은 방이었다. 협소한 그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림을 그렸다. 그의 곁에는 오로지 그림만 있었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 버릴 작정이다.” 장욱진은 그렇게 말했다. “그저 그림 그리는 죄밖에 없다.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림처럼 정확한 놈은 없다.”

장욱진은 외곬의 화가였다. 그러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장욱진의 제자들이 회고해서 말하는 것처럼 그는 ‘소박하고 큰 분’이었고, ‘신념이 강했지만 자유인’이었고, ‘제자들과 이불을 같이 덮고 함께 자고 제자들과 목욕탕도 가던 분’이었다.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에서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다”고 말했던 장욱진. 나는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살펴보면서 깨끗한 힘 같은 것을 느꼈다. 자신의 안과 바깥을 제어하고, 덜 소유하고자 애쓰면서,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과 일상에 몰입하고 또 즐기면서, 순진한 동심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있던 그 애씀 같은 것을 뭉클하게 느꼈다. 마치 저 먼 산속 설원에 우뚝 선 빈 가지의 한 그루 나무처럼, 혹은 단단한 바위처럼, 혹은 동안거에 들어간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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