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부산 사람의 성정은 화끈하다. 이 기질은 정치판에도 예외 없이 통용된다. 서슬 퍼런 5공 군부 독재 시절,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정권 타도를 외치며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개혁 과제를 일거에 처리했다. 박관용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조차 하나회 척결은 당일 알았을 정도로 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는 유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를 정치권에 입문시킨 YS와 기질은 엇비슷하다.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장세동 정주영 등 당시 권세가들을 혼쭐내던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의 사자후는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누구도 예상 못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의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이도 노무현이다.
이처럼 부산의 정치인, 특히 지도자들은 언뜻 무모해 보이지만 기존 관념과 제도를 뒤엎는 도전에 능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는 리더십으로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추락하는 지역 경제처럼 부산 정치도 근성을 잃어가고 있다. 모험과 도전, 열정은 사라지고 얄팍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술수만 난무하고 있다.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시작된 뒤 모두 7차례(보궐선거 한 차례 포함) 부산시장 선거가 치러졌지만 지역 국회의원이 당선된 것은 단 두 차례에 그쳤다. 초대 문정수 시장과 현 서병수 시장이 그들이다. 선수(選數)만 늘리는 데 관심 있지 용기 있게 도전에 나선 배포 있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는 6월 열리는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에선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수두룩하지만 서병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는 없다. 무기력 그 자체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연말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 중진의원을 겨냥해 “게을러서” “중앙정치 재미에 빠져” 등을 이유로 시장직 도전을 회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직설적 화법으로 설화에 자주 오르내리는 홍 대표지만 이날 발언은 지역 정치권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눈치 보기는 마찬가지다. 집권 여당인데다 부산시정을 가져올 절호의 기회라 봐서 그런지 너무 신중 모드다. 시장 선거에만 네 번째 도전하는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의 지지율이 1위를 고수하는 배경에는 기존 여권 정치인들의 소극성도 한몫했다.
기초단체장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6월 지방선거에서 현역 단체장의 불출마가 예상되는 지역은 부산이 경기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부산에서는 16개 구·군 중 절반 가까운 7곳이 무주공산이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소가 터진다. 현역 단체장들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 7곳 모두 3선 연임에 걸려 ‘정년퇴직’하기 때문이다. 반면 광주 광산구청장 남구청장, 대구 수성구청장, 인천 부평구청장 등은 다르다. 체급을 올려 광역단체장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구청장 출마를 과감히 포기할 예정이란다.
부산은 올해뿐만 아니라 과거 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차례도 기초단체장의 광역단체장 도전이 없었다. 일단 구청장이 되고 난 후 지역 국회의원과 호흡만 잘 맞추면 임기 12년이 보장됐으니 모험이나 도전은 이들에게 언감생심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 구청장들의 평균 연령은 전국 대도시 중 가장 많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자치단체장의 3선 연임 제한은 논란거리임이 분명하지만 부산지역만 놓고 보면 3선 연임의 긍정적 결과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같은 지역 정치권의 무기력과 방관은 고스란히 지역 정치 생태계를 약화시킨다. 젊고 유능한 전문가 그룹의 정치권 진입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노회한 지역 국회의원과 호흡 맞추는 데 관심 있는 토호들만 설쳐댄다. 무능한 지역 정치권을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온다.
부산은 전국 대도시 중 고령화와 저출산, 실업률 등 각종 지표가 최하위권이다. 수도권에 대응하는 동남권 광역공동체의 핵심 도시로서 위상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 국가 균형 발전 차원에서라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이런 배경의 기저에는 지역 정치권의 무기력과 안일함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의 환골탈태 없이는 지역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동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을 강조했다. 그중 으뜸은 열정이다. 6월 지방선거에 즈음해 여야 모두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정치 경력만 늘리는 데만 관심 있는 현실 안주형 정치인은 필요없다. 저돌적인 모험가형 정치인을 육성할 토양을 갖춰야 한다. 그게 실종된 ‘부산 정치’ 복원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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