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디지털 가상화폐) 투자와 관련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눈에 확 들어왔다. 국내 직장인 중 30% 정도는 암호화폐 투자 경험이 있으며 이 중 80%는 “수익을 냈다”고 했다. 13% 정도는 원금 유지였고, 손실을 봤다는 응답자는 단지 7%뿐이었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 정말로 샐러리맨 10명 3명이 암호화폐를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자 10명 중 8명은 수익을 냈다는 건가.
난 이 결과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남지만 큰 틀에서 방향성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공식집계는 아니지만 작년 말 기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계좌 수는 이미 200만 개를 넘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3조 원대였고, 심지어 10조 원을 넘어 코스피를 추월한 믿기지 않는 그런 ‘광풍’도 불었던 게 사실이다. 10명 중 8명의 계좌가 플러스라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령 지난 1년간 1비트코인 가격은 1000달러대에 1만5000달러(최고가 1만9860달러)로 최대 20배가 올랐는데 단기간 추세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손실을 봤더라도 속칭 ‘물타기’로 따라붙었다면 무조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부터 암호화폐 투자 광풍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가 초강력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계좌를 뒤져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도 했고, 아예 “작년 같은 투기 광풍이 또 나온다면 거래소 폐쇄도 고려하겠다”는 마지노선까지 언급했다. 물론 정부가 국내 거래소를 폐쇄한다 해도 투자를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다. 암호화폐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거래로 인터넷으로 미국이나 일본 등의 거래소에 가서 투자를 하면 된다. 하지만 절차가 상당히 귀찮고 해당국 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연초 이후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현 상황은 그야말로 ‘태풍 속의 고요’이다.
이 대목에서 오히려 암호화폐 광풍이 남긴 이면을 살펴보고 싶다. 첫째, 왜 이런 극단적 투기 국면까지 왔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수익률이 좋아서? 대박 신화 때문에? 맞다. 이런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미 달러화로 대변되는 인류의 종이돈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달러가 그렇게 좋다면, 유로가 엔화가 그렇게 믿을 만하다면 왜 이런 멀쩡한 돈을 두고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 암호화폐에 수백조 원이 몰리겠는가. 어쩌면 우리 뇌리에는 제멋대로 찍어내는 기축통화인 달러가 비트코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
둘째 이면은 단적으로 말해 우리 국민 중 200만 명 이상은 더는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더 걱정은 20대 후배들이다. 600만 원으로 시작한 비트코인이 2억 원이 됐다는 정도의 인증샷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하루에 20% 정도는 우습게 움직이고, 24시간 내내 벌벌 떨며 시세 조회를 하는 이런 투자행태를 경험했다면 앞으로 연 3~5%대 은행 정기적금은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11월 강의 도중 이더리움으로 1200만 원을 벌었다는 복학생의 “코스닥 같은 걸 왜 해요?”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난 그 1200만 원은 겪지 않았어야 할 첫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이면은 암호화폐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중국과 우리는 강력 규제 쪽이다. 반면 미국 일본 유럽 쪽은 시장으로 끌어들여 제도권에서 상대하자는 입장이다. 시카고선물거래소와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등장한 비트코인 선물은 그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따뜻한 태양이다. 그래야 파국을 맞이할 때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초등학생인 우리 둘째가 비트코인을 사고 싶다는 판국에 규제로만 광풍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분명 암호화폐들의 폭락은 찾아올 것이다. 1비트코인 가격이 긍정론자 주장대로 10만 달러를 간다면 더욱더 그에 상응하는 급락이 와야 그 탄력으로 튀어 오를 수 있다. “한 절반쯤 날려도 지장 없는 여윳돈으로 쉬엄쉬엄하는 거야.” 대학교 2학년 처음 주식계좌를 텄을 때 증권사에 다니던 사촌 형이 내게 해줬던 조언이다. 암호화폐도 다르지 않다. 그래야 이길 수도 있다.
경제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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