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식물 그리는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식물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꽃이다. 과학적 식물학명의 체계를 마련한 스웨덴의 의사 겸 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도 식물의 분류 방법을 꽃을 분석하면서 세웠다. 식물은 꽃을 피우는 데 한 해 써야 할 에너지의 70% 이상을 쏟는다. 이곳이 바로 자손인 씨를 만들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꽃을 세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식물의 숨겨진 생존 전략이 드러난다.
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 꽃의 공통점은 가운데 원 안에 아주 작은 꽃들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아주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꽃은 이 수십, 수백 개의 작은 암술과 수술이 들어서 있는 부분이고 겉에 크고 화려한 색으로 감싸고 있는 꽃잎은 곤충들에게 꽃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일종의 알림판이다. 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가 다른 꽃들에 비해 오랫동안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는 이 에너지 집약형 전략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하나 꽃을 피우는 것보다는 한데 모여서 에너지를 모아 훨씬 더 많은 씨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운 셈이다.
튤립, 수선화, 크로커스 등의 알뿌리 식물에는 다른 전략이 숨어 있다. 곤충의 수가 많지 않은 초봄을 기반으로 한 식물인 탓에 여러 개의 꽃을 피워 많은 씨를 만들어내지 않고 하나의 씨를 알차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꽃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하나의 꽃대가 올라와 하나의 꽃을 피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대신 어떤 상황이 와도 꽃을 피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위해 땅속에 두툼한 알뿌리를 만든다. 양파와 같은 이 알뿌리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 찾아온다 해도 그해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을 수 있을 만큼의 영양이 비축돼 있다. 이 비축은 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년 한 해 노력에 의해서다.
최근 틸란시아라는 종의 식물이 실내식물로서 인기다. 이 식물은 뿌리를 발달시키지 않고 대신 잎을 겹겹이 장미꽃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덩치를 키우지 않고 가벼워서 다른 나무의 가지에 매달려서도 잘 자란다. 이 종 중의 하나인 ‘스페인 모스’는 아예 잎이 머리카락처럼 생겨서 바람이 불면 날리다 다른 나무에 걸리면 거기서 성장을 지속한다. 이들의 생존전략은 물과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얻는 것에 대한 포기에 있다. 이 포기를 통해 중력을 이겨내고 위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지만 대신 어디에서라도 생존이 가능한 이동성을 얻은 셈이다.
동물의 경우도 생존 전략은 다양하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의 경우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집단생활을 한다. 이유는 매년 수십㎞에 달하는 거리를 풀을 찾아 오가야 하는 삶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장거리를 오가는 데 혼자의 힘은 너무 미약하기에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세대가 함께 무리를 이뤄 공동으로 새끼를 양육하며 살아간다. 만약 코끼리가 개별적으로 한 마리씩 개인 생활을 했다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맹수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을 게 분명하다.
반면 코끼리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하이에나의 삶의 전략은 다르다. 사냥을 해야 하는 이들은 한꺼번에 많은 먹잇감을 확보할 수 없기에 무리를 이룬다 하더라도 가족 단위거나 혹은 이합집산으로 잠시 서로 뭉쳤다 다시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이들의 전략도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셈이다.
지구의 역사를 통해 보면 압도적인 생명체였다 해도 삶의 전략이 잘못되는 순간 멸종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겪은 종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과학자는 우리 삶의 전략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깊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압도적인 생명체로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과연 앞으로도 이 삶을 지속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의 자손에게 건강한 삶을 전달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정원 강의를 하다 보면 정원조차 없는 도시인이 많이 참석한다. “어? 정원도 없으신데 왜 이런 강의 들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기 좋으면서 슬프기도 하다. “미세먼지 걱정도 많이 되고, 이렇게 강의라도 들으면 뭔가 힐링이 되는 듯싶어서요….” 도시의 삶이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시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도시가 자연과 공생하지 못하면서 우리 삶에도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건 분명한 듯싶다.
삶의 전략은 본능이다. 우리의 본능이 더는 자연을 멀리하지 말라 하고, 가까이 정원을 두라 한다면 어쩌면 그 안에 답이 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혹시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삶의 위험을 막아낼 삶의 전략이 여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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