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퇴임한 지 약 5년1개월 만에 구속된 것이다. 110억 원대 뇌물과 340억 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앞으로 많은 다툼이 있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그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거나’ ‘아랫사람이 알아서 한 것’으로 범법 사실을 부정하며 ‘허위로 만들어진 서류’를 통해서 자신에게 보복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일부 정파의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잇따른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지난 사회와의 절연(絶緣)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들의 구속은, 이른바 경제발전을 제일 우위에 두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혹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하여 반성을 촉구하는 단초가 된다. 50여 년 동안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나타났던 폐해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특히, 경제개발이라는 우상(偶像) 속에 드리워진 집단 사유는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적) ‘성공’에만 쏠려 있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결국 ‘좀 문제가 있어도 좋으니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다’라는 집단 기원(祈願)의 발로라는 냉정한 평가를 돌이켜봐야만 한다.
우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동시에 흔히 이야기되는 축약 발전의 전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도 언급된다. 이는 경제적 발전에 대한 찬사와 그 축을 같이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스스로를 다이나믹 코리아로 범주화시키면서, 그것을 우리가 갖는 사회적·문화적 특성으로 구획(區劃)하고 있다.
실제로 1987년의 제도적·형식적 민주화는 이른바 절차적 과정의 요건을 갖추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대통령 직선제, 정기적인 정권교체, 정당정치 등에만 주로 민주화가 포획되면서, 우리는 우리가 정말 민주화되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숙한 민주주의 요체는 정치적 평등은 물론 사회적 다양성의 확보와 존중에 뻗어 있다. 정치적 다름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 다툼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공존에 합의하는 것이 실질적 민주주의 주요 내용이다. 한 정치학자의 명제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민주주의조차 경제발전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재단하고 있는 듯하다. 즉, 성공에 대한 집착이라는 집단 심성은 상대방의 다른 생각과 입장을 무시하는 쪽으로 이어진다. 성공해야 한다는 일원적 사유는 한 가지 것에만 가치를 몰아주는 것으로 사회적 평등과 다양한 입장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일원적 사유는 젠더, 종족, 계급 등의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맹(文盲)으로 이어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Me-Too) 또한 젠더를 매개로 하는 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 문맹과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역이다. 이 현상은, 성공한 많은 남성이 여성이 가져야 할 섹슈얼리티의 자기 결정권을, 내가 좌우해도 문제없다는 착각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 된다. 성공한 나의 욕망과 관심이 너의 (하찮은) 신체보다 우위에 있다는 환상이 성폭력·성희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에서 경제적 성공이라는 국가적 신화가 블랙홀로 작동하듯, 성공에의 찬사가 ‘(성공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용납될 수 있다’는 괴물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본질적 평등과 다양한 사회적 입장들은 실패자의 쓸모 없는 변명과 옹호로 비추어진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내밀성은 그 여지가 없어진다.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무능과 부패에 대한 단죄로만 귀결시킨다면 우리가 갖는 삶의 질적 변화는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물론 범죄에 대한 단죄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제는 실질적 평등과 다름을 수용하는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만 한다. 정부에서 내놓은 개헌안에서 국민(國民)을 ‘사람’으로 환치시키려 하는 것처럼, 영어의 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일원적) 성공 신화에 집착’하는 사회적 집단 심성을 극복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찰이 없으면 진보는 없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