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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하필왈리’의 재발견 /조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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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04 19:22:2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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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몇 연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10년은 채 되지 않았지 싶다. ‘맹자’에서 ‘하필왈리(何必曰利)’를 처음 읽었다. 유명한 고사이자 문장이니 많은 분이 아시겠으나 글을 전개하기 위해 굳이 소개하면 이렇다.

중국 전국시대의 군주 양혜왕(기원전 400~334년)은 애가 탔다. 선대한테서 물려받은 그 넓은 땅을 맹수 같은 주변 나라들에 엄청나게 빼앗기고 나라는 위태로워졌다. 그래서 양혜왕은 현자로 이름난 맹자를 초빙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께서 분명히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으시겠지요?” 이때 맹자가 내놓은 답변이 저 유명한 ‘하필왈리’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오로지 어짊과 올바름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때 이 대목을 읽으며 ‘경악’했다. 위대하다는 맹자가 (나쁜 뜻으로)‘큰일 낼 사람’으로 다가왔다. 해서는 안 될 말 같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미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실질(利)을 추구해 전국시대 진(秦)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든 상앙의 사례가 명백하고, 조선과 중국은 망해갈 때 실용(利)의 화신 같은 기세로 메이지유신을 단숨에 이뤄 열강의 길로 내달렸던 과거 일본의 전례가 생생한데, 어짊(仁)과 올바름(義)이라니! 이명박 정부때였던 그때 시대 분위기 탓인지, 이익을 버리고 인의를 취하라는 듯한 맹자의 주장은 실질을 버리고 명분과 이념에만 집착해 사회와 나라를 경직되게 만들 위험한 경구로 들렸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다시 ‘맹자’에서 ‘하필왈리’ 대목을 읽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게 아니었구나”였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싶어서 뼈가 아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걸 지켜보면서 그런 심정은 최고치에 이르렀다. 맹자의 ‘하필왈리’는 이로움과 인의를 별개의,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한 뒤 이로움을 ‘버리고’ 인의를 취하라는 이분법이 아니었던 거다.

눈앞에서 방긋 웃으며 유혹하는 이익과 실천하려면 고생깨나 감수해야 할 듯한 올바름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갈등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이때 더 큰, 더 근원적인, 더 높은 차원의 이로움(이익)을 얻기 원한다면 올바름과 어짊을 택하라는 가르침이다. ‘버리는 것’과는 좀 다르다. 알고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크고 근본적인 이로움에 이르는 길이며 ‘남는 장사’임을 다시 읽은 ‘하필왈리’는 천둥처럼 알려줬다.
이는 뜻밖으로 간단한 이치이고 예시도 풍부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죽도록 ‘이로움’을 강조했다. 인의를 고려했다는 흔적은 찾기 힘들다. 자원외교, 4대강사업을 한다면서 인의 따위는 걸리적거리는 대상일 뿐이니 이로움만 추구하면 천국이 올 것처럼 나라와 사회를 몰아갔다. 그렇게 국정원은 치욕적인 댓글부대로 전락했고, 결국 그 자신이 사적 이로움을 불법으로 탐한 혐의로 구속됐다. 나라의 큰일을 하고,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데서 이로움 말고 어짊과 올바름을 앞세워 생각했다면 이 지경이 됐을까? ‘이로움’에만 매달리는 것과 ‘어짊과 올바름’을 중심에 놓았을 때 중 어느 쪽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더 큰 ‘이익’을 줬을까? 그가 지금 거처하는 곳이 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어짊과 올바름에 관한 감각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 더 할 말이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하필왈리’의 이(利)와 인의(仁義)는 서로 배타하는 적대적 요소라기보다 동심원 같은 구조일 수 있겠다. 게다가 과연 더 크고, 더 높고, 더 근원적인 이로움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철학적 지렛대 구실도 한다. 물론, 이로움과 인의가 선명히 구분되는 영역도 있다. 만약 장사하는 사람이나 기업가가 맹자에게 “내 사업을 이롭게 할 방도가 있겠지요” 하고 물었다면, 맹자가 양혜왕한테 한 것처럼 “어짊과 올바름이 있을 뿐”이라고 답했을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상인과 기업인에게 알맞은 답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필왈리’는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걱정하는 큰 물음에 대한 큰 대답이다. 맹자답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와 산하 행정기관이 갈 길은 어떤 길인가? 어짊과 올바름의 길이다. 그것이 훨씬 크고 진정한 이로움을 줄 것이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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