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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현장] 김지영과 아이린 /신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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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최근 새삼스럽게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16년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내내 판매량 상위에 올라 있다가 올 초에야 기세가 누그러졌는데,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히면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자 다시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언급만으로 일부 남성팬은 격렬한 분노를 표하며 “팬심을 철회”했고, ‘화형식’이라며 그녀의 사진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 뉴스를 접하며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꼈는데 “하는 짓들 참 한심하네”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확신하건대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그녀를 비난한 사람 대다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악마의 시’로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은 살만 루슈디가 자신의 사진을 불태우는 시위자들에게 “루슈디의 소설을 읽었느냐”고 묻자 “그런 쓰레기 같은 소설을 왜 읽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루슈디가 이슬람을 실제로 조롱했는지를 떠나, 비난하는 대상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무지한 비판자들에게 공격당했다는 점은 ‘김지영’과 ‘악마의 시’가 비슷하다. 내용도 모르면서 혐오를 발산하다니 철없는 초등생 짓일 거라며 웃어넘기고 싶으나, 어리다고 해서 이런 무지와 폭력이 용인돼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린을 비난한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면 그건 좀 더 우울하다. ‘82년생 김지영’은 내로라하는 여성주의 소설들과 비교해서 엄청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은 아니다. 이 시대의 한국 여성이 감당해 온 부조리를 골고루 겪게 하는 과정에서, 인물은 전형화됐고 문학성은 축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성 독자들의 유례 없는 지지를 받았고, 수많은 여성이 이 책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소설을 읽고 눈물 흘리는 이유는 단 하나, 공감이다. 한국 여성들에게 ‘김지영’의 문장 하나하나는 목에 걸린 가시와 같다. 까다롭고 현학적인 비유 없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된 동시대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남성이 그렇게 많다면, 그런 사회야말로 공포다. 모를 리 있겠는가. 이 시대 남성이 짊어진 고통도 만만찮다는 것을. 남성도 자신의 고통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면, 이번에는 여성이 공감할 것이다. ‘왜 황금연휴 전날 생리하냐’며 울고 있는 여성의 머리를 쥐어박는 데만 열 올리는 ‘90년생 김지훈’ 같은 방식이어서, 그걸 중계하듯 부추기는 황색 저널리즘이어서 오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걸리는 대목은 댓글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김지영·아이린으로 검색하면 “아이린, 책 한 권 때문에 페미니스트 논란”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이라고?” 같은 기사 제목이 뜬다. ‘김지영’과 아이린을 페미니즘의 ‘오명’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듯한 뉘앙스다. 남성 불행의 원인을 사회 모순이 아닌 ‘여성 지위 향상’에서 찾으려는 저열한 움직임에 의해,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여성 이기주의로, 페미니스트는 젠더 이기주의자로 내몰린 상태다. 인터넷에서는 ‘페미×’이라는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 다닌다. 누군가에겐 깜짝 놀랄 만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페미니즘은 흑마술이 아니다. 논란거리도 아니다. 남녀가 함께 행복을 추구하자는 호소일 뿐이다. 그러니까 ‘순수한’ 아이돌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도 페미니즘 소설이 맞다.

문화부 부장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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