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755년 4월 11일에 런던에서 태어난 외과의사다. 당시의 외과의사는 상처를 치료하고 간단한 수술을 도맡았지만 병을 진단하고 약을 쓰는 ‘의사’보다 신분이 낮았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높았다. 진료소에 오는 환자만 치료하기보다 환자를 만들어내는 가혹한 정치 제도와 사회적 병폐를 치료하고 싶어 했다.
그의 나이 서른 즈음에, 영국을 향한 변화의 물결들이 드세졌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왕정을 거부하는 시민 혁명이 일어나 1783년 영국이 그 땅에서 쫓겨났다(미국 독립). 1789년에는 해협 건너 프랑스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나 철옹성 같던 왕정을 무너뜨렸다(프랑스 혁명). 혁명 후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공화주의를 이웃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불사하고(나폴레옹 전쟁 1803~15년), 당연히 왕정을 지키려는 지배층들은 반프랑스 전선을 구축하여 공화주위의 전파를 저지하려 나섰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이 시기에 시민의 손에 권력이 넘어왔지만, 섬나라 영국은 시민 혁명의 높은 파도가 비껴갔다.

영국 왕은 시민 혁명의 파도를, 나폴레옹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반나폴레옹 진영에 전비를 지원했다. 비록 영국 땅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영국 사람들은 전비 지원을 위해 과중한 세금을 물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자신을 억압하려는 왕정주의자들의 전비를 채워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공화주의 물결이 영국을 ‘패싱’하는 한, 희망은 없었을 거다.

젊은 그는 이 상황을 그냥 볼 수 없었다. 몸은 영국 왕의 신민이지만 가슴은 시민 혁명의 불길로 뜨거워졌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는 길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라 믿은 그는 메스를 놓고 펜을 들었다. 시민의 참정권을 촉구하는 팸플릿을 만들고, 비밀 결사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국왕 시해 미수사건이 터지고 조직원들과 함께 일망타진 당해 추밀원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으로 그는 10년간의 정치 투쟁을 접고 다시 메스를 들게 된다. 외과의사로서 진료 외에도 연구를 하는 성실함을 보여 통풍이나 충수염에 관한 연구 논문도 썼다. 글쓰기 솜씨를 살려 여러 편의 의학 대중서적도 출판했다. 과격한 정치 투쟁은 사양했지만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마저 접지는 않아 정신병원과 감옥의 수용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벌였다. 말년에는 고생물학과 지질학 연구에 몰두해 자연과학자로 살았고, 1824년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외과의사가 아니라 해도, 그는 자연과학자 사회개혁가 등으로 기억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의 이름이 익숙한 것은 널리 회자되는, 그의 이름이 붙은 질병 때문이다. 1817년, 그의 나이 62세에 아주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 몇몇을 관찰하여 하나의 병으로 정의했다. 환자들은 마비가 온 듯 손을 제대로 못 쓰는데, 특이하게 손을 몹시 떨었으며 구부정하게 걷고 화난 사람처럼 굳은 표정 일색이다. 그는 이 병에 ‘떨림 마비’라는 병명을 붙였지만, 반세기 후 ‘떨림 마비’는 발견자인 그의 이름을 붙여 ‘파킨슨병’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쉬운 병명은 아니다. 필자의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이 병을 파킨스병, 파키스탄병, 파슨스병 등으로 부른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기도 듣기도 좋은 병명으로 ‘박인선병’을 제안한다.

박(博)은 그의 폭넓은 연구를, 인(仁)은 소외계층에 대한 측은지심을, 선(先)은 선각자적인 정신을 기리는 뜻이다. 원음과도 비슷해 금상첨화라 생각한다. 오는 11일, 그의 생일에 맞춰 ‘세계 파킨슨병의 날’ 행사가 전 세계에서 열린다. 이 기회를 빌려 ‘박인선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커지고 더 많은 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길 바란다.

제주 박지욱신경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