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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개성 영통사와 금강산 마하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03 19:44:3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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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인은 시 ‘민간인’에서 이렇게 썼다.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이 시는 남북이 38선을 경계로 왕래가 어려워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47년 봄’에 용당포를 몰래 건너가는 한 민간인 일가의 비극을 드러내고 있다. 야밤을 틈타 사공이 노를 저어 배를 몰아갈 때에 갓난아기가 울음을 터뜨렸고, 살아남으려고 영아를 물속으로 밀어 넣은 참담하고 비통한 일에 대해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수심(水深)’은 단지 바다의 깊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갈라선 갈등의 깊이요, 한 가족이 품게 된 아득한 슬픔의 깊이로 읽힌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판문점선언이 있었던 날에, 나는 김종삼 시인의 이 시가 생각났다. 가슴속에 용당포와 같은 공간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남북한의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정세 변화를 관심 있게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한반도에 모처럼 불어오고 있는 봄의 훈풍을 맞으면서 나는 개성 영통사와 금강산 마하연을 문득 떠올렸다. 그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제일 먼저 꼭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강산 관광이 열리던 때에 나도 금강산엘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많은 경관을 기억에서 잃고 말았지만, 여름 계곡의 깨끗한 물과 장쾌한 구룡폭포의 물줄기가 잊히지 않는다. 푸른 물이 괸 담소들과 크고 흰 반석들도 기억 속에 놓여 있다. 모기가 많은데 괜찮으냐는 말에 한 북한 안내원이 “(모기가 우리는) 안 깨뭅니다”고 말했는데, ‘(모기가) 물다’라는 말 대신 ‘깨물다’라는 말을 활용하는 것이 색다른 데가 있었다. 해금강도 둘러본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풍광을 알지 못하겠다. 단풍이 곱다는 가을의 때나 설경 또한 빼어나다는 겨울의 때에 다시 한번 금강산 관광을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나 이뤄지질 못했다.

개성 영통사는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천년고찰인 영통사의 복원에는 남북 공동의 노력이 있었지만 특히 대한불교 천태종의 공이 컸다. 복원사업에 약 46만 장의 기와와 단청재료 3000세트, 묘목 1만 그루 등이 들었다. 29채의 전각이 다시 세워졌고, 2005년 10월 31일에 낙성식을 열었으니 이제 꽤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북한 웹사이트에서는 당시 소식을 전하면서 “최근 개성시 룡흥리 오관산에서 발굴된 영통사터는 고려 초기에 세워졌던 절간 자리”라고 소개했는데, 영통사의 전경을 사진으로 본 이후로 나는 이 절을 한 차례 순례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금강산의 4대 사찰로는 장안사, 표훈사, 신계사, 유점사가 손꼽힌다. 나는 이 가운데 내금강 유점사의 말사인 마하연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1912년에 찍은 사진 한 컷을 인터넷을 통해 보았다. 1920년대 후반에 동산 스님이 마하연에서 정진할 당시의 사진을 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조계종 스님들이 마하연 선원이 있던 터의 폐허에 앉아 참선에 든 사진을 뉴스 기사와 함께 본 적도 있었다.

마하연은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보우선사가 출가했고, 나옹선사가 머물렀던 금강산 최대의 참선 도량이었다. 장안사에서 십 리를 오르면 표훈사가 있고 좀 더 올라가면 마하연이 있는데, 한때 승방 53개를 갖췄었다니 그 위용이 대단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고승인 만공 스님을 비롯해 청담 스님, 성철 스님, 자운 스님이 수행했다. 특히 북한의 으뜸 수행처인 마하연에서 성철 스님이 수행하던 때의 일화도 전해져 온다.

성철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을 찾은 때는 1939년이었다. 세속 나이로는 스물여덟 때였다. 동안거를 위해 금강산 마하연 선원을 찾았다. 그리고 도반인 자운 스님을 마하연에서 만났다. 한문을 잘 알고 있었던 성철 스님은 마하연에서 수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초서로 쓴 편지를 대독하고 답장을 대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렇게 정성껏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가 방해받는다는 이유로 속가와의 절연을 평소에 강조했던 스님을 몹시 당황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1940년 봄에 성철 스님의 속가 어머니께서 스님을 만나러 금강산을 찾았던 것이다. 산청에서부터 진주, 부산, 서울을 거쳐 찾아온 것이었다. 사흘이 걸리는 멀고 먼 길이었다. 스님은 속가 어머니를 뵙는 것을 거부했고, 마하연 선원에서는 토론이 벌어졌다. 산청에서부터 그 험한 길을 온 속가 어머니를 만나주지 않고 재회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마하연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은 토론 끝에 성철 스님이 속가의 어머니를 잘 대접해 모실 것을 요청했고, 대중들의 간곡한 뜻이어서 성철 스님도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성철 스님은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 구경을 하게 된다. 길상암, 보덕암, 만폭동, 표훈사, 그리고 신계사, 옥류동, 구룡폭포 등에 이르는 일주일 동안의 유람이었다.

성철 스님은 속가 어머니와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하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서 다음 해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을 읊었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이 깨달음의 게송을 일갈하고, 스님은 장좌불와 수행을 시작했다. 어쨌든 당시 금강산 마하연은 전국의 스님이 용맹정진을 위해 찾아들던 뜨거운 수행처였으니, 금강산의 다른 명소보다도 마하연이 있던 공간에 한 번쯤 발을 들여놓고 싶은 기대가 내게도 생겨났다. 금강산에 있던 절 가운데 남북 불교도들이 함께 복원한 사찰도 있다. 신계사가 그곳이다. 신계사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삼층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대웅전과 명부전 등 11개 전각을 2007년에 모두 복원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불교계에서는 대동강 강가에 있는 영명사와 마하연 복원 불사를 희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게도 올해의 봄은 개성 영통사와 금강산 마하연을 생각하게 되는, 가슴 벅찬 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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