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음모론’이라는 제목으로 이런저런 글들이 올라온다. 나름 과학적으로 보이는 근거 제시와 함께 그럴싸한 논리를 구사하기에 멋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진실로 믿기 일쑤다. 대표적인 것이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날조설, 미국 정부의 2001년 9·11테러 자체 기획설 등이다.

이런 주장이 워낙 관심을 끌자 수년 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에 가장 많이 거론됐던 내용을 바탕으로 ‘세계 10대 음모론’이라는 기사를 실은 적도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례 외 미국 네바다주에 외계인 기지 존재,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가공 인물,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사인은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라는 가설 등이 포함됐다.

이코노미스트 목록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아돌프 히틀러 사망을 둘러싼 논란도 널리 퍼진 음모론 가운데 하나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연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 다만 자살방법과 관련해서는 권총 사용이나 독극물 복용 등으로 추론될 뿐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히틀러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대개 신나치주의자들. 히틀러는 그때 죽은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오랫동안 생존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달이나 남극에서 살았다는 말까지 내놓았다.

최근 프랑스 병리학 연구진은 러시아가 보관 중인 히틀러의 치아 연구를 근거로 그가 1945년 죽은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유럽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히틀러는 잠수함을 타고 아르헨티나로 도망치지도 않았고 남극이나 달 뒤편에 숨어 있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루하게 진행됐던 히틀러 사망 음모론에 대한 시시비비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끝낼 수 있게 됐다고 못 박았다.

외신들은 논리가 부족한 히틀러 생존 음모론이 과학적 성과로 무장한 이번 논문에 의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신나치주의자들이 연구진의 학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음모설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설 경우 소모적이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높다. 7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히틀러가 만약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