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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관건은 ‘트럼프 모델’이다 /이경식

비핵화·체제보장 교환, 북미회담 성공 최선책

역지사지 정신 발휘로 한반도 탈냉전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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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에 걸친 기나긴 냉전 탓일까. 북미의 비핵화 갈등이 자못 살벌하다.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미국이든, 벼랑 끝에서 버티는 북한이든 사활을 걸기는 매한가지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대미 비판 담화부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화해 담화,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재추진 메시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한반도의 기상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미가 강한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갈등의 원인은 비핵화 방법이다. 북미가 타협할 수 있는 비핵화 방법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 지금까지 두 나라의 입장 충돌에서 확인됐듯이, 미국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골자로 한 ‘리비아 모델’ 적용을 계속 고집하는 건 무리로 여겨진다. 먼저 비핵화한 다음 보상한다는 건 불합리하거니와 신뢰하기도 어렵다. 비핵화한 뒤 보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에 했던 북미 제네바합의를 미국이 이행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당시 북한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고,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정치·경제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수로 건설은 2002년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합의를 파기하면서 중단됐고, 중유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1990년대 내내 북한을 전쟁 대상국으로 설정해 놓으면서 정치·경제관계 역시 정상화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 측 관리들은 1998년 의회에서 “북한이 어떤 측면에서도 근본적으로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은 없다”고 증언해 행태가 대조적이다. 한림대 이삼성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서 “미국과 한국이 제네바합의를 이행하려고 노력해서 신뢰를 쌓았다면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전쟁 위기를 무릅쓰면서 핵 프로그램에 집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비핵화와 보상을 동시에 교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북한이 현재 만들어 놓은 핵무기와 앞으로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고 관련 인력까지 모두 전직시키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 11월 전까지 CVID를 완수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북한이 줄곧 강조해온 ‘체제 보장(Guarantee)’을 해줘야 한다.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대북제재 해제, 북미 수교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를 비핵화 로드맵에 맞춰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해도 남는 우려가 있다. CVID를 하면 더는 핵 개발을 할 수 없게 되지만, 체제 보장 등 보상은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체제 보장 또한 CVID처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CVIG’이다.

문제는 ‘트럼프 모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에 대해 김 부상이 비판 담화를 낸 뒤 한 발 물러나 ‘트럼프 모델’ 적용 의사를 밝혔지만 그 실체가 모호하다. “물리적으로 단계적 해법은 어느 정도 필요하나 비핵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는 게 내용의 전부다. 김 부상은 화해 담화에서 “트럼프 방식이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길 기대한다”며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북미가 조율을 통해 서로 만족하는 ‘트럼프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동에서 드러났듯이 걸림돌이 많아 전망이 밝지 않다. 

가장 큰 난관은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주축으로 한 미국 행정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다. 이들은 ‘힘이 곧 정의’라는 신념 아래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미국 지배체제로 만들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2월 월스트리저널 기고를 통해 “북한에 대한 선제폭격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에 대한 리스크로 인해 대북 군사력 사용을 원하지 않지만, 이런 우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에 주는 리스크에 비해서는 작다”며 한반도 전쟁 불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는 제네바합의 파기를 이끈 실무 주역이며, 최근 이란 핵 합의 무산을 주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시한 내에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바꿀 수 있는 ‘트럼프 모델’을 강구하는 게 당면 최대 과제다. 남북이 힘을 합쳐 내달 12일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 그 과제를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갈등이 심할수록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됨을 말이다. 이것이 한반도 탈냉전의 정치학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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