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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현장]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송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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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물 수(水)와 갈 거(去)의 만남, 물이 흐르는 대로 간다는 뜻이다. 법하면 판사가, 판사하면 법봉이 떠오른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 판사봉을 잡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일까. 돌잡이 용품들도 사회 분위기와 부모의 취향에 따라 바뀌지만 돌잡이가 시작된 이래 절대 빠지지 않는 게 법봉(판사봉)과 연필이다. 한 연예인은 딸이 돌잡이를 하면서 법봉을 잡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돈이 최고라는 시대, 그래도 부모라면 자녀가 법봉이나 연필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을 솔직히 한 번쯤은 가져봤을 테다. 판사가 법정에서 판결 주문을 낭독한 뒤 내리치는 법봉. 하지만 대한민국 법원에는 법봉이 없다. 국회에, 국회의장의 손에 들려 있다. 그렇지만 이 나무 봉을 법봉이나 판사봉으로 먼저 부르지 의사봉이라고 하진 않는다. 법봉, 즉 판사는 우리 사회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법정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법정 내 재판부가 앉아 있는 연단을 법대라고 부른다. 시대 상황에 따라 예전보다 높이가 상당히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정 내 높낮이가 구분되는 건 법대뿐이다. 아울러 재판부가 입장할 때 방청객까지 모두 기립해야 한다. 요즘은 묵례를 하는 재판부가 많지만 재판에 지각하고도 양해 인사는커녕 묵례조차 없이 방청객을 세워두는 재판부도 있다. 게다가 법정에서는 착모와 껌 씹기는 물론 ‘불량한’ 자세로 앉는 것마저 용납되지 않는다. 법적 근거라고는 하나 없는 권위적인 관행이다. 그래도 ‘민주시민’이 군소리 없이 따르는 데는 법원과 법관에게 갖는 존경심, 나아가 서릿발 같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법원과 법관에게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공정과 정의, 존경의 대상인 대한민국 법원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근대 사법시스템이 갖춰지지도 전인 중세 시절에서나 나올 재판 흥정, 판결 거래라는 말이 난무한다. 민주공화국의 토대라고 배운 삼권분립과 법관 독립을 그저 ‘단어’로 만들어 버렸다. 대한민국 사법부 존립을 뒤흔드는 초유의 상황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법부의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판결)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의로운 판단에 열광하고, 앞으로의 판결을 기대하면서 그 좌절을 치유했다. 최근 문건에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행태, 흥정의 대상이 돼 버린 ‘양승태 대법원’의 정의는 국민에게 참혹한 배신감을 안겨줬다.
최종 심판자인 법원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일은 불행한 일이지만 사법부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불행은 사법부가 자초했다. 검사나 변호사, 원고나 피고, 혹은 피고인은 몰라도 방청객까지 일으켜 세우며 권위를 강조해온 법원이 판결에 승복하지 못하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버린 대가다. 권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법원과 법, 정의라면 재판부 입장 때 기립 등의 법정 권위 따위는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인권 침해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전체 법관은 지난 3월 기준 2936명이다. 오늘도 돌잡이를 앞둔 누군가의 부모는 자녀가 판사봉을 잡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부산 솔로몬 로 파크의 모의법정을 찾은 유치원생들은 검사, 변호사보단 높은 자리에 앉은 판사의 역할을 하고 싶어 치열한 자리싸움을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은 법원, 법관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을 일어서서 맞이하는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학수고대한다.

생활레저부 차장 roll66@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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