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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갈맷길, 함께하면서 강해진다 /변영상

‘2019 ATC’ 부산 개최, 갈맷길 세계화의 첫발

시민부터 많이 찾아야 업그레이드 빨라지고 도보 여행객 불러모아

  • 국제신문
  • 대기자 bys@kookje.co.kr
  •  |  입력 : 2018-05-31 19:33:44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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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짧은 거리였지만 제주올레길을 처음으로 걸어 봤다.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은, 대한민국 걷기 열풍의 시작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길로 평가받는 그 길을 지금에야 밟아 봤다니. 한 해 평균 80만 명의 외지인이 방문한다는 데 바빠서, 여유가 없어 찾지 못했다는 건 핑계일 터. 아마 천성이 게을러 내 삶을 무미건조하게 방치한 탓일 것이다. 아직 쓸 만한 두 다리에 미안한 감이 들었던 제주올레길 탐방이었다고 할까.

제주올레길 11코스는 서귀포시 모슬포에서 내륙 무릉마을까지 17.3㎞. 부산에선 볼 수 없는 화산이 만든 섬만의 풍광이 천천히 나타났다 느리게 사라졌다. 하이라이트는 ‘무릉 곶자왈’. 먼 옛날 한라산 폭발 때 흘러내린 용암 위에 생성된 천연자연 숲이다. 그 속으로 꼬불꼬불 2.5㎞ 길이 나 있었다. 들어가면 통신이 어렵다는 것에서 그 형세를 짐작하면 될 터. 현지인은 잊혀진 옛길, 비밀의 숲이라며 한껏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또 그럴 만했다. 

10코스의 ‘다크 투어리즘’ 대상지는 평화와 인권을 되새겨 보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일제가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제주민을 강제 동원해 만든 비행장, 격납고, 지하벙커 등을 둘러보는 길이다. 부산만이 간직한 ‘한국전쟁 피란수도 1000일’의 자원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제주올레길이 복 받은 것 중 하나는 언덕처럼 보이는 휴화산의 일종인 ‘오름’에 있지 싶다. 수백 개가 산재했는데 도보길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군데군데 고사포진지 흔적이 남아 있는 10코스의 섯알오름도 그러했다.

지난 29일 제주올레길 걷기는 느렸지만 좀 지쳤다. 그래도 의미가 컸던 건 전날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TN(아시아 트레일즈 네트워크) 임시총회 참석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ATN에는 한국·대만·일본·중국·러시아의 걷기 단체가 가입해 있고, 국제신문 (사)걷고싶은부산도 회원이다. 이들 국가에다 별도로 초청받은 터키, 레바논, 영국 등지의 민간 트레일 관계자들이 우정의 길을 걸은 것. 앞으로 활발해질 도보여행길의 세계화 흐름을 목도한 것은 적잖은 소득이었다.

10~20㎞ 거리의 정규코스 26개 등으로 총 425㎞를 걸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도록 완성한 게 제주올레길이다. 길을 개척한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왈. 10여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면서 받은 영감을 고향 제주에 접목해 보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이랬다는 거다. “어느 바보가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관광지 제주에 와서 섬을 걷겠나?” 근데 그것이 웰빙 붐과 함께 여행 패턴이 점에서 선으로 옮겨가면서 맞아떨어져 오늘날 한국 도보길의 창시가 된 것이다. 몽골과 일본 규슈에 ‘올레’ 명칭까지 수출했다 한다. 부러운 일이었다.

부산갈맷길의 시작은 2009년이고 제주올레길은 2007년이다. 부산이 좀 늦긴 했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발 빨랐던 셈이다. 10년이 되는 올해  9개 코스, 278.8㎞를 공학적으로 완성한 밑바탕에는 부산시와 국제신문 (사)걷고싶은부산, 도보 전문가그룹의 협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 평가받는 길을 만든 일등공신은 어제도 오늘도 갈맷길을 걷고 있는 부산시민이다. 

사실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을 표방하고 있는 제주올레길에도 약점이 있다. 땡볕과 바람이 심한 길도 많고, 구석구석의 길을 연결하는 바람에 위치를 잃고 헤매기 십상인 길도 있다. 기막힌 코스지만 위험해서 한두 명으로는 갈 수 없는 길 또한 존재한다. 갈맷길도 단절 등의 흠이 없지 않지만 ‘부산만의 옷’ 또한 입고 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게 제주올레길에서 얻은 수확의 하나다.

주 초 제주를 방문한  (사)걷고싶은부산 등 일행은 ATN임시총회에서 ‘걷기 아시안게임’으로 불리는 ATC(아시아 트레일즈 콘퍼런스) 내년 대회를 부산에 유치했다. 길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019 부산 ATC’는 갈맷길을 아시아에 내놓고 세계화의 문을 여는 일이다. 무엇이 최우선 돼야 할 것인가? 

제주올레길은 외지인들 길이다. 지역경제파급 효과가 한 해 3000억에 달해 ‘올레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으나, 외부인 의존도가 높다는 건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반면 부산 갈맷길은 생활 길이다. ‘지역민=경쟁력’ 등식이 성립된다. 우리가 갈맷길을 가지 않으면서 외지인에게 와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자는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교훈 하나를 얻었다. ‘길, 함께하면서 강해진다’. 많은 부산시민이 걸어야 갈맷길의 개선·보완도 빨라지고,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갈맷길은 도보여행객을 불러모을 것이다. 덜 걸으면서 생기는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걸으면서 회복하는 차원에서도 갈맷길은 가치 있다. 이제 갈맷길을 신자. 그게 명품길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대기자 b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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