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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설악당 무산 스님의 원적(圓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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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07 19:34:5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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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큰 별’이셨던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스님께서 얼마 전 입적하셨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무애도인으로 칭송되던 스님의 영결식에 다녀왔다. 스님의 영결식에는 많은 분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열린 설악산 신흥사 설법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무산 스님의 오랜 도반인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은 스님의 행장을 소개했고, “스님이 남긴 공적은 수미산처럼 높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그 공덕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수행자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며 무산 스님의 인품을 찬탄했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이장을 지낸 정래옥 씨는 조사(弔辭)를 통해 스님을 처음 뵈었던 때의 일을 소개했다. 23년 전에 스님이 백담사에 오셨을 때 뵙고 부모님과 같이 섬기고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이장하고는 나하고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이제부터는 내가 이장을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살 터이니 그리 알고 지내라”고 하셨다며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 신흥사 일주문까지 스님의 법구를 이운했다. 700여 개의 만장, 위패, 영정을 앞세운 장엄한 행렬이었다. 나도 만장을 들고 이운 행렬을 따라갔다. 다비식은 건봉사 연화대에서 치러졌다. 법구를 불에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식 장례의식에 따라 엄수됐다. 캄캄해졌을 때 이르러 불길이 사그라지고 습골이 이뤄졌다.
   
나는 스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스님은 조급해하는 나의 마음을 늦추어 주셨고, 비좁고 인색한 나의 마음을 넓혀주셨다. 언제가 스님은 내게 이렇게 이르셨다. “잘못되었다고 생각 말아라. 잘못된 게 오히려 복이야. 섭섭한 생각을 말아라. 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야. 사는 일은 남 비위 맞추는 것이야. 그걸 제일로 잘한 분이 부처님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인생은 이와 같고 저와 같은 것이야.” 나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해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스님은 가끔 나를 부르셨고, 불교 문학과 관련한 일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우리 시단의 기라성 같은 여러 선생님을 모시며 일을 했고, 말석에 앉아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스님은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수승한 시조로 쓴 대표적인 승려문인이었기에 문인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셨고, 또 많은 지원을 하셨다. ‘유심’ 발간이나 ‘불교평론’ 발간, ‘불교문’ 발간 등은 스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스님과의 인연을 졸시 ‘흰 반석-무산 오현스님께’를 통해 쓰기도 했다. ‘백담사 계곡에서/ 흰 반석을 보니// 한 철에는 물 아래 눈 감고/ 한 철에는 물 위에 눈 뜨고// 쏟아져 흐르는 때에 얼고 마르는 때에// 앉아만 있으니// 구름은 가버리고/ 또 생겨나도// 고요뿐// 흰 뼈만 남은 고요뿐’이라고 써서 스님의 금강(金剛)처럼 견고한 수행 정신을 담기도 했다.

스님은 세연을 마치기 달포 전에 시자를 불러 열반송을 남기셨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이 열반송을 접하면서 나는 스님께서 시집 ‘아득한 성자’를 펴내면서 쓴 글이 생각났다. ‘지금껏 씨떠버린 말 그 모두 허튼소리/ 비로소 입 여는 거다, 흙도 돌도 밟지 말게/ 이 몸은 놋쇠를 먹고 화탕(火湯) 속에 있도다’. 지극히 당신의 지위를 낮춘 이 말씀에는 하심이 있고, 또 우리 사는 이 삶이 욕망을 떨쳐내기 매우 어려우니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스님은 당신을 소개하실 적에도 매우 겸손하셨다. 어느 책에서는 당신에 대한 소개를 “백담사에 머물면서 눈이 멀어 물소리만 듣고 산다”라고 쓰셨다.

스님은 수행하는 제자들에겐 엄하셨지만 세인들에게는 푸근하게 대해주셨다. 심지어 당신이 받은 선물들을 쌓아놓지 않고 모두 세인들에게 나눠주셨다. 칭찬을 또 많이 하셨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이가 요즈음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곤란이 있는지를 훤히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그이의 형편에 맞는 말씀으로 곤경을 풀어가는 법을 에둘러 알려주셨다. 따뜻한 밥과 따뜻한 차를 흔쾌히 내주셨다. 스님이 원적에 드셨다는 소식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도 SNS를 통해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 번씩 불러 막걸릿잔을 건네주시기도,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습니다”라며 스님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소탈하고 정 많은 인품을 추억한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스님의 생전 법문은 소박하다면 소박했고, 파격이라면 파격이었다. 스님은 작년 2월 백담사에서 동안거 해제 법문을 통해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면, 몸에 힘을 다 빼고 중생을 바라보면, 손발톱이 흐물흐물 다 물러 빠지면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됩니다”고 일갈하셨다. 또 지난해 하안거 해제법문에서는 운집한 대중들을 향해 “나는 대중 여러분 한 번 바라보고 대중 여러분들은 나 한 번 바라보면, 나는 내가 할 말을 다 했고, 여러분들은 오늘 들을 말을 다 들은 것입니다. 날씨도 덥고 하니 서로 한 번 마주 보고 그랬으면 할 말 다 하고 들은 말은 다 들은 것입니다. 오늘 법문은 이게 끝입니다”라며 법석에서 내려오셨다. 유마거사는 ‘일체중생이 아프면 나 또한 아프다’라고 했다. 세속 한가운데에서도 가능한 좌선(坐禪)이 살아 있는 참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스님 법문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한편, 스님이 원적에 드신 후 스님이 남몰래 하셨던 선행들도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는 2011년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에 참석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된 대학생들의 벌금 1억3000만 원을 스님께서 익명을 전제로 대납했다고 밝혔다.

   
무산 스님의 49재는 백담사, 만해마을, 진전사, 건봉사를 거쳐서 다음 달 13일 신흥사에서 막재를 봉행한다. 스님은 떠나셨지만 몸소 보여주셨던 가르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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