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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낙태 논쟁, 윤리와 인권의 접점을 찾아 /정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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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0 18:53:2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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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성을 종족 보존의 수단을 넘어 쾌락의 중요한 원천으로 여긴다. 생식이 아닌 쾌락 행위로서의 성은 불가피하게 원치 않는 임신을 수반한다. 완벽한 피임을 통한 성생활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임신은 낙태와 관련된 윤리적, 인권적, 법적, 사회경제적 갈등을 잉태한다. 낙태란 태아가 생존 능력을 갖기 이전에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임신을 종결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임신중절을 의미한다.

인간 생명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종교에서는 대체로 낙태를 죄악시한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인간 생명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도 가장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인간 생명을 파괴하려는 모든 시도는 거부되어야 하며, 자신의 생명을 포함하여 어떠한 생명이든 인간 생명을,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빼앗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라고 설파한다. 가톨릭의 교황회칙은 낙태를 윤리적인 무질서이며, 안락사와 더불어 어떠한 인간의 법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모자보건법의 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위적인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한다. 낙태를 한 임신부와 함께 낙태 행위를 한 사람도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통계는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생명권 보호의 입법 취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시작되고,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낙태죄가 폐지된 데다,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낙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낙태 논쟁의 핵심은 생명권과 자율적 인권 간의 대립과 충돌이다. 즉, 윤리적 차원에서 생명을 어떻게 규정하고 인권적 차원에서 여성의 자율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의 문제다. 윤리와 인권은 서로 상충하는 대립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낙태 문제는 이들 간의 접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윤리적 차원에서 인간 생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매우 지난한 문제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된 순간부터 생명의 시작으로 볼 것인지, 세포분열을 통해 장기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태아 시기부터 생명으로 간주할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임신을 신의 뜻에 따른 창조로 여기는 종교계에서는 피임 자체를 신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인간의 성행위는 본능적 욕망의 표출이기에 윤리적일 수만은 없다. 성행위의 결과인 임신이 원치 않는 것일 때의 결정 행위 또한 윤리적일 수만은 없다.

한편, 자율권 차원에서 여성들은 출산과 낙태를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임신중절의 합법화를 요구한다. “여성은 아기공장이 아니다, 여성은 인큐베이터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통해 여성을 아이를 낳는 기계로 보지 말고, 임신과 출산의 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자율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불법적인 낙태에서 초래되는 심신의 위험 요인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임신중절에 따른 모성 사망률은 임신 첫 2개월 후부터는 매 2주가 경과할 때마다 2배 증가한다. 낙태가 허용되지 않을 때 불법적인 임신중절로 인한 여성의 건강권이 그만큼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뜻이다.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권리는 중요하고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임신부의 권리 역시 중요하고 보장되어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부의 자율권이 만나 현실적인 타협을 이루어낼 수 있는 접점은 어디일까? 선진국에서는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임신 초기 12주까지는 낙태를 임신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고 있다. 이 시기는 세포분열을 통해 장기가 형성되는 배아의 단계로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태아 이전의 단계다. 임신중절에 따른 위험 요소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 시기를 신성과 인간성이 화해할 수 있는 접점으로 보면 어떨까?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죄 폐지가 결정되는 날, 리오 버라드커 총리는 “우리는 여성들을 믿고 그들이 올바른 결정,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접하면서 다음의 문구가 뇌리를 스친다. “윤리의 역사는 아무도 그에 맞춰 살 수 없는 훌륭한 이상들로 점철된 슬픈 이야기다.”

부산대 의전원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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