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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헤지펀드가 한국재벌을 노리는 이유 /정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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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2 20:23:4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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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Hedge Fund)’는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을 떠도는 투기성 자본이다. ‘헤지’라는 말은 위험을 회피한다는 뜻이지만, 헤지펀드는 주식이나 채권 외에 파생상품에도 과감히 투자해 고수익을 노린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윤리성이나 도덕성은 무시한 채 수익만 추구하는 헤지펀드를 ‘게릴라 자본’ 혹은 ‘하이에나 자본’이라 부른다. 대부분 케이만 같은 조세 회피처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헤지펀드는 금융 통제력이 약한 국가나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아 고수익을 챙긴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도 따지고 보면 헤지펀드로 떼돈을 번 인물이다.

요즘 한국 재벌들이 헤지펀드 공포에 떨고 있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현대차그룹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무차별 공세에 백기를 들었다. 10억 달러 정도를 현대차와 기아차 등에 투자한 엘리엇은 이를 지렛대 삼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반대했다. 엘리엇은 2015년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개입했다가 당시 삼성과 정부의 역공에 실패한 적이 있다. 삼성물산은 2005년에도 영국계 헤르메스펀드의 적대적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들어온 헤지펀드는 100곳이 넘고, 투자금액은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투자대상은 부도 위험이 적고 영업력과 내부자금이 튼튼한 자산 10조 원이 넘는 기업들이다. 말하자면 ‘재벌급’ 기업은 대부분 헤지펀드의 투자목록에 들어 있는 셈이다.

이들이 집중적으로 노리는 곳은 대주주의 지분이 낮아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흔들 수 있는 기업이다. 그래야 적은 자본을 투입해 고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대상이 경영권 승계를 목전에 두고 있거나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재벌이다. 일시적으로 대주주의 경영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우리나라 재벌의 상당수는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다.

문제는 재벌들 스스로 헤지펀드들에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재벌그룹은 경영권 승계를 하면서 기업 가치를 후려친 다음 저가에 자녀에게 기업을 넘기려 한다. 자녀들 명의로 된 껍데기 회사에 일감을 집중 몰아주는가 하면 주주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주주 맘대로 계열사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꼼수도 부린다. 우량 회사에 쌓아둔 내부자금을 대주주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기고 배당이나 상여금 명목으로 챙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허점을 노려 1% 안팎의 지분을 매집한 뒤 지배구조를 흔들면 막대한 수익을 챙기기란 식은 죽 먹기다.
재벌에 편향된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약점도 헤지펀드가 재벌을 공격하는 빌미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으면 정부도, 금융당국도, 언론도 모두 나서서 재벌 편들기에 여념이 없다. 재벌 내부에 감춰진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이런 맥락을 잘 알고 있는 헤지펀드는 재벌을 상대로 공세를 편 뒤 해당 재벌이 자금을 풀어 방어에 나서면 쏜살처럼 털고 빠진다. 헤지펀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세력이다. 수익을 위해서라면 경제대국뿐 아니라 신흥국 정부와 맞서서 한판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이다. 당장 헤지펀드를 이겼다고 파티를 벌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회사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자본시장을 폐쇄하고 외국인 투자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는 한 헤지펀드의 시장진입을 막을 수는 없다. 재벌을 지킨답시고 언론을 동원해 헤지펀드의 행태를 비난해도 일시적인 분풀이일 뿐이다. 투기성 펀드이든 투자성 펀드이든 모두 돈을 벌려는 자본이라는 점은 똑같다. 그들에게 도덕성이나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단언컨대 회사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주식을 사주는 투자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헤지펀드의 공격에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스스로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투명한 경영을 하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더러운 음식이 없으면 파리는 꼬이지 않는다. 비리로 점철된 대주주가 자신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헤지펀드만 탓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자칫 자본 국수주의를 외치다가 외국자본이 모두 떠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20년 전 한국경제를 나락에 빠트린 외환위기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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