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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종필 전 총리의 언어 /소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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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26 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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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내가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다. 부여읍에서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보령시 쪽으로 가다가 내산(內山)면을 거치면 만나는 곳이 외산(外山)면 반교리이다. 외산면은 부여-청양-보령의 삼각점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지명처럼 산세가 나름 험하다.

반교리 인근에는 무량사가 있다.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생을 마친 곳이다. 반교리에서 무량사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하면 10분도 안 걸린다.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라는 이른바 ‘5都 2村’ 삶을 살고 있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休休堂’도 반교리에 있다. 충남에서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돌담이 있는 마을이어서 ‘돌담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23일 세상을 떠난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가족 묘원이 이곳에 있다. 반교리 야트막한 산자락 한쪽에 ‘김해 김씨 가족 묘원’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김 전 총리의 형제들 그리고 2015년 세상을 떠난 김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이곳에 묻혔다. 김 전 총리도 박 여사와 합장을 했다. 이곳에 있는 묘비명은 2015년 김 전 총리가 이미 써놓은 것이다.

‘사무사(思無邪)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을 치국(治國)의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 진력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 연구십이지팔십구비(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탄(嘆)하며 수다(數多)한 물음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 하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 준 영세반려(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자신의 정치 철학과 삶의 자세를 특유의 은유법으로 표현했다.

김 전 총리는 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3김(三金)시대’의 한 주역이었다. 그의 별세는 정치적인 3김시대의 종언에 이어 물리적인 3김시대도 저물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쟁과 암투, 때로는 협력 속에서 권력을 창출했던 3김시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을 상징했다. 1970년부터 40년 동안 3김은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김 전 총리는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치는 3당 합당을 통해 1992년 김영삼 정권이 탄생하는 디딤돌을 만들었다. 1997년에는 DJP연대를 통해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경쟁자였던 양김(兩金)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빛나는 조연’ 역할을 했다. 그는 내각제를 통한 집권을 꿈꿨지만 말 그대로 꿈에 그쳤다.
5·16쿠데타는 김 전 총리의 정치 인생 뿌리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박정희 시대의 시작이 5·16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 철권통치의 대표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부장을 맡은 이도 그다. 또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 씨의 딸 박영옥과 결혼했다. 박 전 대통령과 처삼촌 관계였다. 이로 인한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5·16의 설계자였지만 ‘박정희 시대’에 그는 견제받았다. 그럼에도 반발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2인자’였지만 권력적인 측면에서 그가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가 정치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인척이라는 점과 ‘2인자로서의 처신’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대한 명암은 뚜렷하다. 쿠데타의 주역에서 수평적 정권교체의 조력자까지, 보는 시각에 따라 판이하다.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것이 한 단면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도 있다. 김 전 총리가 비유의 달인이고 멋을 아는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검도 풍금 바둑 그림 등을 배운 그는 예술적인 기질을 정치적으로도 발휘했다. 타협을 중시했으며 지도자들이 만나면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설적인 언사보다 은유와 비유를 즐겨 표현했다.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줄탁동기(啐啄同機)’ 등 그가 거론하는 용어들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깊은 독서에서 나온 결과였다. 요즘 여야 간에 투박하고 험한 말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것을 보노라면 김 전 총리처럼 은유와 비유로 말하는 정치인의 존재가 아쉽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들에게 맡기고 정치인들은 일단 김 전 총리의 언어 구사법부터 배우면 어떨까.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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