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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선진 한국의 삶과 노동 /김현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08 19:18:1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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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광고 문구다. 만성 피로 사회,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의 삶을 잘 녹여낸 해학적인 모습에 많은 이가 공감하였다. 1950,60년대 산업발전을 시작하여, 개발도상국 단계를 지나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일상은 과로사회란 단어로 압축된다. 일과 가정을 영위하는 아빠와 엄마는 생활비를 척척 뽑아내는 현금지급기나 일과 과정을 오가며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수퍼맘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명퇴자, 경단녀가 되기 일쑤다. 말하자면 노동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직장을 도려낸 나머지 생활이 삶이라 지칭되며, 개인은 둘 중 하나에 몰입해야 하는 극단적 선택 상황에 부닥쳐 왔다.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이는 주 40시간 근무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이 더해진 총 68시간 근무제에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가 총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 개정안이다. 이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 제도는 입법 공포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다. 첫째, 제도의 혜택에 대한 노동자 간 격차가 클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도권 내에서 휴일과 수당을 보장받고 있던 노동자만이 줄어든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란 거다. 실제 이번 달 제도의 시행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규제될 뿐, 300인 미만 업체에서는 기준에 따라 1년 반에서 3년까지 유예된 기간을 기다려야 하니 틀린 주장이 아니다. 둘째, 기업이 제도의 급작스러움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계속해서 적용 시기의 유예나 탄력근로 확대 등 사용자 측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부가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전경련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를 국내로 초청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특별대담을 가지며,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 없는 적용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구했다. 당시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의 노동시간이 주당 52시간이나 되냐며 놀라 반문하여 질문자의 의도를 무색게 했다. 자본과 노동의 시소가 오랜 기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에서 노동 권한 강화 시마다 사용자 측 부담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새로운 제도를 적용하며 정부가 이해관계자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은 타당하다. 노사 간 갈등은 물론이고, 특수고용직 혹은 특례업종 종사자들은 규제의 선 밖에 있다. 또한 특근과 야근으로 임금을 보전받았던 저임금 노동자층이 수입 감소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미 2000년대 들어서며 주당 48시간 근무제의 정착을 유도하는 노동정책을 시도해 왔으나, 만성적인 초과근무, 월화수목금금금 쉬지 않는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발전국가 시기를 지나며 고용의 안정 대신 장시간 노동과 임금억제 정책을 맞바꾸어 성장해 왔다. 휴가와 휴식을 비용으로 책정해 지불받는 구조는 이미 사회에 정착해 있다. 1997년 외환 금융위기 이후 노동구조와 경제체제는 일순간 신자유주의식 경쟁에 내몰려 직장의 안정성은 유명무실해졌으나 노동자 측이 부담해 온 압도적인 근로 시간과 저임금 구조는 지속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자본의 성장과 소득의 성장 간 괴리는 점점 더 간극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그동안의 정책 리듬과 다른 울림이기에 큰 반향을 내고 있다. 제도의 시행이 목적한 바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구성원 간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적 변화로 인한 눈앞의 피해로 모두가 이구동성 소리치기보다 넓은 혜안을 갖고 긴 호흡으로 제도의 안착과 효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올해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기준인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실상부 선진 대열에 합류한 한국은 2017년 기준 연간 평균 2113 노동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의 높은 순위다.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1766시간, 가장 낮은 순위인 독일은 1371시간이다. 1950년대 ‘토요일에 아빠는 나의 것’이란 표어로 노동시간 단축을 유도해 온 독일사회는 지속적인 노사정 대화와 협력으로 가장 적은 시간 일을 하며, 잘 사는 국가를 건설해 왔다. 앞서 언급한 크루그먼 교수의 강연 제목은 ‘성장만으론 충분하지 않다’였다.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성장만이 아니라 건강, 수명, 웰빙 등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사회적 포용’ 정책임을 상기해야 한다.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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