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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뜨는 지역, 좋은 동네의 조건 /김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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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9 19:11:3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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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성북구에 다녀왔다. G20 정상회담 때 영부인들의 한국문화체험 장소이자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방문한 가구박물관으로 유명한 이곳에 진작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왜 이곳을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뜨는 곳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서였다.

성북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유산이 많다. 무엇보다 지역 이름의 유래가 된 성곽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고, 한용운 전형필 조지훈 같은 근대 유명 인물들의 가옥 등 흔적과 스토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침 성북동에서 열린 문화재야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니 줄을 서야 했고, 지역 문화해설사의 설명은 끝없이 이어졌다. 부러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파트단지 옆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에선 유럽 단편영화제가 열리고,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선 페미니즘연극제가, 과거 느린 수돗물에 압력을 가했던 시설은 ‘성북예술가압장’으로 탈바꿈하여 지역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고 수많은 도서관은 책 읽고 배우는 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점점 이곳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관계자들에게 이런 변화의 배경을 물으니 전 구청장과 성북문화재단이 계속 거론됐다. 8년 임기를 끝낸 구청장은 당선 초부터 인수위 대신 평범한 주민들을 모아 주민참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소통을 통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에 주력했고 그 중심엔 문화예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의 업적 중 하나는 성북문화재단을 만들고 독립성을 보장한 것이었다. 자율성을 확보한 재단은 사업, 예산, 권한을 지역 문화예술인 모임인 ‘공유성북원탁회의’라는 민간 협력 주체에게 이양했고, 이들은 6년간 거의 공모사업을 하지 않고 협치를 통해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심지어 대표 2명 중 1명은 사다리를 타서 선정한다고 한다. 이런 파격적인 운영 방식으로 국제기구 ‘세계지방정부연합’으로부터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문화정책 사례’라는 평가를 받으며 아시아 최초로 올해 국제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런 협치 배경에는 믿음이 자리했다. 평범한 주민들이나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믿음, 대단한 것을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보다 주민이 행복한 지역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 말이다.

상황을 알고 본 성북구는 남달라 보였다. 강남처럼 부유하지도, 마포보다 예술가가 많지도 않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삼청동보다 세련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산동네는 오르기 가파르고 곳곳엔 아파트들이 경관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받은 인상은 한 단어였다. ‘공존!’ 고가다리 밑 창작촌은 미아리 점집들과 함께였고, 커다란 저택과 산동네 빼곡한 서민주택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성곽과 문화유산, 도서관, 영화관, 공연장들이 사람 사는 동네 곳곳에 우물처럼 박혀 있는 공존의 풍경. 이게 함께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은 사실 성북구보다 못할 게 없다. 근대문화유산이 지천이고 산, 강, 바다 천혜의 자연. 하지만 우리는 동래읍성을 복원하기는커녕, 그곳에 새로운 구청사를 지으려 한다. 구청사를 짓고 안 짓고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합의했는지가 문제다. 새로 선출된 지역정권에 별 기대하지 않는다. 인수위 위원이 지역신문에 쓴 글을 보면 또 다른 완장이 떠오른다. 시민들과 함께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자기들 기준으로 과거 정책과 사업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전문성은 능력이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열심히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데이터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공성은 자기 패거리들끼리 세운 정의의 기준과 상관없다. 가치와 이해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을 통해 공존과 공생의 방법을 찾으려는 태도가 출발점이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조직이나 사업보다 합의에 이르는 절차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다.

좋은 지역 만들기의 대명사가 된 제인 제이콥스는 특정 전문가들에 의존하는 계획수립에 반대하며 지역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도시 만들기를 주장했다. “도시는 모두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만한 능력이 있다. 단, 도시가 모두에 의해 창조될 경우에만 그러하다.” 그녀의 말은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교훈이다. 성북동을 방문하고 ‘뜨는 지역’, ‘좋은 동네’의 첫째 조건은 독선과 교만을 버리고 공존을 위해 서로를 믿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신설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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