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어용에 대하여 /황경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0 19:28:38
  •  |  본지 30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551년(명종 6년), 51세의 남명은 정6품직인 종부시 주부로 임명되지만 벼슬을 사양한다. 1953년, 명종은 다시 정6품의 벼슬을 내리고 퇴계 이황을 통해 남명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남명은 눈병을 핑계로 사양한다. 1955년, 명종은 다시 남명에게 단성현(경남 산청) 현감의 벼슬을 내린다. 상경하라는 것이 아닌 고을 현감직이니 사양치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남명 조식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벼슬을 거절하면서 명종에게 상소문을 올린다. 그것이 ‘단성현감사직소’다.

“(전략)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랩니다.(중략)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서 히히덕거리며 술 마시고 즐기는 일에 정신이 없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오직 백성의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정신이 팔려 물고기의 배가 썩어들어 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오라 조정의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 떼처럼 날뛰면서도,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후략)”

남명은 그 대상이 임금이건, 조정이건 간에 입바른 소리만 할 뿐 관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명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바른 정치-세상의 개혁이었지 입신양명이 아니었다. 어용이라는 말은 본래 임금이 사용하던 물건을 뜻한다.

그러니까 어용학자라는 말은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그 임금(정권)의 물건처럼, 혀처럼 군다는 말이다. 혀처럼 구는 어용학자의 입에 비판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어용은 이념이나 사상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양심과 윤리의 문제일 뿐, 그 정권이 어떤 성격의 정권이든 간에 잘못된 정책과 제도를 비판하지 않고 옹호하는 것은 어용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과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수많은 어용학자를 보아왔다. 4대강 사업은 그 어용학자들이 잘못된 정부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고 선전하면서 시행된 대표적인 국책사업이었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노무현 정권은 사기업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출한 ‘국정과제와 국정 운영에 관한 어젠다’에 따라 경제정책을 입안했고, 그 결과는 아직도 일반 서민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용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거대한 카멜레온 떼와 같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이번 정권이 촛불혁명의 결과라고 말한다.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수구기득권세력을 몰아내고 이 정권을 탄생시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수많은 학자와 지식인이 ‘촛불혁명의 위대한 승리’라느니, ‘촛불혁명을 완수하자’느니,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의’라느니 하는 화려한 수사를 총동원하면서 촛불을 찬양하고 있다. 정권과 학자들이 입을 맞춘 앵무새처럼 촛불에 대해 지저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미심쩍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이심전심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는지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탈핵현장, 쌍용자동차 현장, 밀양송전탑 현장, 소성리 사드배치 현장, 형제복지원 증언대회 현장 등 촛불혁명의 주체들이 있던 곳을 방문하거나 그들의 목소리에 응답해 왔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이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더불어 이 정권이 탄생하기 전 그들과 함께 싸우거나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던 수많은 학자와 지식인들 역시 그들을 모르쇠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문재인 정권은 오류가 없는 정권인지, 어떤 권력은 결코 잘못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건지, 학자와 지식인들이 정권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게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건지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과연 이 정권에 어용은 없는가. 문재인은 조식의 상소문과 같은 비판을 듣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어용은 정권도, 시민도, 어용 그 자신마저도 파괴하는 전염병 같은 거니까.

작가·헤세이티 대표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하태경 국방위 바른미래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장제원 예결위 한국당 간사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토지’에서 부산의 문화예술을 떠올리다
기내식과 문어발, 그리고 ‘총수님’의 갑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북항에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지어야 한다면
도심, 걸을 수 있어야 빛나는 곳
기고 [전체보기]
‘가야’라는 구슬 서 말, 부울경이 잘 꿰어야 /송원영
걷기, 100세 건강 지켜줄 최고 처방전 /이용성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동산 이젠 출구전략을 /민건태
기초의원 자질 키우자 /김봉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워라밸·스라밸, 삶의 균형은 있는가
외교는 전쟁보다 어렵다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납세자로서의 유권자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1000억 영화기금에 대한 단상 /신귀영
부산·대구 너무 다른 식수대응 /조민희
도청도설 [전체보기]
드라마로 철학하기
백제 무왕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작지만 매력 많은 동네책방
설악당 무산 스님의 원적(圓寂)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공직자의 침묵
부산 여당의 과적 운항
박창희 칼럼 [전체보기]
서부산 신도시, 누구를 위한 것인가
高手의 질문법
사설 [전체보기]
연구개발과 해체 부산시, R&D 의지 있나
빨간불 켜진 응급의료센터망 해법 찾아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지금 ‘복지국가 뉴딜’이 필요하다
변화의 필요성과 소득주도 성장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공룡 기무사의 월권 불감증
부울경 상생, 신기루가 안 되려면
특별기고 [전체보기]
갑질과 배려- 6년간의 부산상의 회장직을 떠나며 /조성제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