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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스핑크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정영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06 19:18:3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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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의 말 죽은 데는 문상을 해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한다는 게 염량세태라지만, 그래도 고관대작들의 영전에는 많은 사람이 붐비기 마련이다. 정치 경력이 화려하다고는 볼 수 없는 한 비주류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념, 진영, 빈부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조문하고 애도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언론도 진보와 보수에 상관없이 다소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연일 그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누구보다도 가장 사람냄새 풍기는 삶을 산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죽음이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이거나 인간답다는 것보다는 사람냄새가 난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인간적’이란 추상적 표현보다 사람냄새라는 감각적 표현이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사람냄새는 초월적이지 않은 감각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표현한 언어다. 그래서 사람냄새에는 완전하고 절대적 존재인 신과 달리 인간은 허물을 지닌 미완의 존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허물을 그는 왜 그토록 자책하며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까.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을 꿈꾼다. 인류 최초로 도시국가를 건설한 길가메시는 자신이 신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영생을 찾아 여정에 나선다. 긴 여정 끝에 그는 영생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추구하는 삶’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값지게 하는 것임을 ‘길가메시 서사시’는 가르쳐준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 및 새의 날개를 가진 신화 속 상상의 창조물이다. 희랍의 작가 소포클레스는 그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목을 조르는 존재’라는 뜻을 가진 스핑크스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길목(경계)을 막는 괴물로서 우리가 버려야 할 구태나 관습으로 상징화한다. 우리가 구태를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로의 진입에 성공하면 경계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스핑크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즉, 스핑크스는 우리 각자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로서 우리가 털어내야 할 구습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죽여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평생 꿈꾸던 사람냄새 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인 스핑크스를 죽였다. 

그는 민중의 언어가 몸에 배어 민중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다. 도올 김용옥은 비유의 달인으로 민중의 언어에 능통한 예수에 비유해서 그를 ‘우리 시대의 예수’라 칭했다. 물론 그는 민중언어의 단순한 연금술사가 아니라 살아온 삶의 궤적 자체가 서민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지향했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죄를 안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었고, 그는 자기 안의 괴물과 사투를 벌였다. 예수는 죽음으로써 부활했고, 그는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인 스핑크스를 죽임으로써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걸림돌 하나를 제거했다. 

평소 언행이 정의로운 사람은 티끌만 한 허물에도 갈등하고 자책한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도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못 보는 게 한국의 정치와 언론의 풍토다. 그 속에서 누구보다 정의로운 정치인이었던 그에게 티끌만 한 허물로 자신과 자신의 정의당에 쏟아질 들보 같은 비난의 화살을 그의 자아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파국적 선택으로 우리는 아까운 한 정치인을 잃었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바로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다. 도올은 그의 이름을 두고 “노회찬은 찬란하다는 ‘찬(燦)’으로 끝난다. 이 때문에 ‘회찬이 찬란하게 말도 없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뜻으로 그는 찬연히 소거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애상하게 만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자살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의지적 행위다. 이 행위는 생명의 본능에 반하는 의사결정이란 점에서 인간이 선택한 가장 파국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자기 죽음을 믿지 않고, 자살자의 무의식적 공상에는 영구불멸성이 자리하고 있다. 해서 자살자는 파국적 선택의 순간에도 더 나은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꾼다.

노회찬이 꿈꾸던 사람냄새 나는 세상은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부산대 의전원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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