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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활력이 넘치는 교토의 특별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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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30 18:53:0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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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름의 교토(京都)를 찾았다. 수년 만에 찾은 교토는 나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거의 그대로였다. 다만,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도시의 격(格)은 한 단계 더 올라간 듯했다. 교토를 찾을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천 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던 이 도시에서는 역사의 웅장함이나 엄숙함보다도 왜 즐거움과 정겨움이 더 크게 느껴질까?” “역사 공부는 어렵고 역사도시 또한 고루한데, 왜 교토에서는 걷기가 싫지 않고 어둠이 깔린 뒤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싶어질까?” 방문 때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이 순간, 우리 경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불국사와 석굴암, 월성대공원과 첨성대, 대릉원의 고분군 등 유산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적 가치가 교토에 우월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런데 교토의 역사 속에 머물 때면 뭔지 모를 새로운 역사에 눈뜨게 된다. 두 도시의 시대 배경이 다르고, 또한 필자가 경주 속에 스며 있는 깊은 의미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차이가 너무 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감히 ‘교토에는 생활역사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라고 결론지어 본다. 생활역사! 말 그대로 교토의 역사는 시민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걷는 길, 보이는 풍경, 앉고 싶은 장소, 먹고 싶은 음식, 간직하고 싶은 물건, 보고픈 장면, 그 속에 채워진 일상 등 이 모든 것이 교토의 역사인 것이다. 어느 기록을 보니 전 세계에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오래된 가게(노포, 역사적인 작은 기업)가 약 6000개가 있는데 교토에 무려 절반 이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200년 된 가게가 이 정도인데, 100년이나 50년 이상 된 가게는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가게들이 도시를 꽉 채우고 있으니 교토에서는 굳이 문화재를 찾지 않아도 교토가 느껴지고,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이면 닳아 반짝이는 돌판 길에 늘어선 물기 머금은 고동빛 가게들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다.
교토에 갈 때면 예상치 못한 돈을 쓰곤 한다. 자질자질한 것에서 조금 비싼 것까지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연다. 어떤 날에는 대를 이어 가게를 지키는 주인장의 인내에 탄복하여, 또 어떤 때는 장인의 땀과 솜씨에 반해 그냥 지갑을 열곤 한다. 이처럼 오래된 가게들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약해지는 지역문화를 지키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모든 가게가 이런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대를 잇는 가게가 되려면 그 집만의 ‘변함없는 품질’과 ‘정성 어린 서비스’ 그리고 ‘특별한 가게 분위기’를 갖추어야 한다.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변하지 않는 그 자리와 주변 풍경’을 들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듯 중요한 조건이다. 이 조건들이 교토의 수천 개소 가게와 수십 개소의 골목길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교토는 별다른 도시재생이나 지역 활성화를 고민하지 않는다. 도시의 전통산업과 대대로 이어지는 가게전통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교토의 활력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오래된 가게들은 지역의 쇠퇴와 낡음을 상징했다. 하지만 재생이라는 도시 철학이 확장되면서 오래된 가게들은 지역의 오래됨을 알림과 동시에 지역사람들이 지역을 지키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역 품격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부산의 광복동과 남포동에도 50년 이상 된 오래된 가게가 30여 곳이나 존재한다. 질곡의 역사로 점철되었던 개항기와 근대기를 생각해 보면 부산의 50년은 교토의 200년에 버금가는 연수라 여겨진다. 희망을 잡을 수 있는 실낱같은 끈이 바로 이것이다.

오래된 가게는 낡고 비위생적이고 침울한 분위기의 가게가 아니라, 정갈하고 소박하면서도 품질의 격을 갖춘 가게를 말한다. 이러한 오래된 가게를 존속시키며 움직여가는 핵심의 작동체는 무엇일까? 당연히 ‘사람’ 즉, 대를 이어 가게를 지키는 후손들과 장인들이다. 그들의 마음, 그들의 정신가치, 그리고 그들의 의지가 있기에 오래된 가게는 이 시대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부터 경상북도에서 흥미로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명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 육성사업’이다. 대를 이어 30년 이상 유지된 기업(가게)들을 발굴하고 있다. 목표가 대단하다. 100년 지속 가능한 경북의 향토뿌리기업 100개 육성! 이를 위해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개수가 중요치는 않지만, 벌써 60개소의 가게를 발굴하여 가게 홍보, 판로 개척 지원, 맞춤형 컨설팅, 낙후 환경 개선 등 다각도로 지정된 오래된 가게들을 돕고 있다. 사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을 고려해 볼 때, 경북도의 이러한 행보는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것이다. 언젠가는 경북도의 바람처럼 100년 넘은 오래된 가게들이 지역 곳곳에서 경제의 중심체로 자리 잡는 것은 물론 지역문화의 살아 있는 전승의 장으로 작동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에서 오래된 가게를 지킨다는 것은 결국 지역 사랑을 촉진하는 ‘지역성 보전운동’이자 지역장인 육성과 지역문화의 기반 강화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사업’인 것이다.

   
오래된 가게는 지역 산물과 지역사람, 그리고 특화된 지역의 장소가 어우러진 결정체다. 가게들이 일정 구역이나 거리에 모여 있다면 그 가치는 수배로 증폭된다. 도심의 골목길들을 상상해본다. 맞춤양복점, 부티크 등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하는 가게들, 그림과 표구·문구·사진 등 소품들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테이스트(taste) 취향의 가게들, 맛과 전통을 갖춘 먹거리 명물 가게들, 그리고 지역 산물을 보존, 가공하여 판매하는 로컬푸드 가게들로 채워지는 상상! 그 상상이 삼십 년 아니 일이십 년 만이라도 제대로 지속할 수 있다면 다양한 지역장인들이 바로 그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를 이으며 새로운 지역 전통을 창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이 오래된 가게들을 가지려면 관의 참된 혜안과 지속적인 과감한 투자, 민의 한없는 지역사랑과 뼈를 깎는 자발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도전해보지 않겠는가. 진정한 지역다움으로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우리의 지역들을 위해.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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