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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생활 SOC: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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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13 18:52:0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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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생활 SOC’ 또는 ‘생활밀착형 인프라’에 대한 계획을 내놓았다. 생활 SOC(사회간접자본)를 구성하는 것은 우선 지역의 작은도서관, 국민체육센터 어린이박물관 복합커뮤니티센터 등이다. 나아가 도시재생, 어촌 뉴딜, 스마트 영농, 쾌적한 전통시장, 지역관광 인프라, 노후 산단 재생, 미세먼지 방지 숲 등도 포함된다.
   
생활 SOC의 기본 방향은 지금까지 있었던 개발 중심의 대규모 SOC에서 사람 중심의 소규모 생활 인프라로 공공 투자를 전환하는 것이다. 도로 철도 공항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 대신 국민 삶과 밀접한 기반 시설을 늘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도 곧 이어졌다. 정부는 생활 SOC 투자를 사람 중심 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정책 방향과 연계해서 사람과 지역에 대한 투자로 주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을 발전시키며 일자리도 늘리는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투자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이다.

생활 SOC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 더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식을 넘어서는 현상의 이면을 볼 필요도 있다. 이 문제는 정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라는 차원에서 나름의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생활 인프라는 개인에게 ‘일상의 발견’을 위한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며, 사회적으로는 ‘공동체 의식의 고양’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설명해보자. 일상은 말 그대로 매일의 삶이지만, 일상의 가치와 의미를 의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상생활은 반복적이며 습관적이다. 일상은 상당 부분 관성의 힘이 지배하는 시·공간이다. 일상생활의 연구에 매진했던 앙리 르페브르도 “인간은 일상적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극단적 표현을 쓰면서도, “일상이란 무의미한 것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하고 자문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터전으로서 일상에 대한 의식을 촉구함과 동시에, 무의미한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발 경제 시대를 살면서 일상성에 매몰된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으로 은유되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잠드는 삶의 단순한 반복으로 풍자되기도 했다. 다양한 생활 인프라는 이런 반복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매일매일의 삶을 다양하게 계획하도록 한다. 뭔가 계획할 때 의미를 발견하는 법이다. 일상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의미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이런 점에서 생활 인프라는 ‘일상의 오아시스’와 같다.

이런 삶을 즐기기 시작하면 ‘작은 행복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대형 건설과 개발 경제 시대의 특징은 ‘큰 것이 좋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횡재의 꿈’을 꾸며 투자보다 투기를 하게 되고 ‘행복의 신기루’를 좇기에 바쁜 삶이기도 했다. 이는 사람들을 일상의 의미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일상생활은 ‘잘사는’ 삶이 아니라, ‘남보다 더 잘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거나 ‘이미 잘살고 있다’는 것을 크렁크렁 과시하는 삶이었다. 생활 인프라의 진지한 실현은 이러한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맥락과 뗄 수 없다.

도서관, 체육시설, 문화사랑방, 복합문화공간 등이 기본적인 생활 SOC라는 것은 공동체 의식의 고양과 밀접하다. 사람들은 소통하고 싶어 한다. 대화하고 싶어 한다. 얼굴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차 마시며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이런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원의 유사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통(communication)의 공간은 곧 공동체(community)의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공동체 의식과 그 구체적 실현은 또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생활화 시대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다양한 인공지능 기기들에 둘러싸여 서비스를 받으면 대인관계 없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반려자’가 되는 인공지능 기기들이 집안에 들어올수록 오히려 ‘사람 사이의 연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이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않는 삶의 순간들을 일상에 마련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쉽게 말해, 사람 사이에 ‘얼굴 맞대기’를 하는 시간을 일상의 여러 차원에서 종종 갖도록 생활을 계획해야 한다. 생생한 얼굴 맞대기는 각종 스마트 기기로 둘러싸여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삶의 환경에 균형을 맞추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상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본 것이다. 하지만 생활 인프라 정책에 대한 비판들은 ‘목전의 실리’에 근거하기 쉽다. 생활밀착형 기반시설의 범위를 확대해 그 사업에 지역민들이 원하는 도로, 철도, 공항 등 전통적인 대규모 토목공사 수요를 포함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는 자기모순적이다. 생활 ‘밀착형’인데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니까 말이다. 정부의 생활 인프라 정책은 결국 ‘여가 수요충족 정책’의 일환인데 주민의 실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면 시설들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비판의 소리를 걸러서 수렴하고 세밀하게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생활 인프라는 “사람에 대한 투자요 지역에 대한 투자”이지만, 그것을 ‘포용 국가’의 개념에까지 연결하는 것은 너무 거창하다. 언급했듯이 생활 인프라는 개인의 일상과 지역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어찌 보면 ‘풀뿌리 사회·문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초적인 삶의 방식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도 거창하게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작은 것을 깊게 보며 ‘깊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의 경구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악마만 그런 게 아니고,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생활 인프라 정책은 삶의 방식 변화를 위한 시대의 요구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더 나은 삶’으로 나가기 위한 천사의 날갯짓이 변화를 위한 긍정적 추동력이 되기 바란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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