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년 전이다. ‘딸깍발이’ 법관으로 유명한 조무제 전 대법관을 부산 교대역 근처에서 가끔 뵈었다. 부산법원조정센터에서 일하던 그는 관용차도 마다하고 항상 법원에서 15분쯤 걸어 도시철도 교대역을 이용해 퇴근했다.

조 전 대법관은 그 당시 이미 많은 사람의 존경받는 스타였다. 숱한 미담을 만든 미담제조기였다. 대법관 퇴임 후 거액의 보수가 보장되는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행 대신 모교인 동아대 강단에 섰다.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전관’이라는 꽃길을 마다하고 후학 양성의 길로 나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법관은 퇴임 후 대형 로펌에 입사해 간판 변호사로 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수임료는 건당 최소 1억 원, 많을 때는 수억 원대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 총리로 지명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로펌 변호사로 일하며 5개월간 16억여 원의 수입을 올린 게 문제가 돼 결국 낙마했다.

대법원 설립 이래 대법관 출신 중에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이는 조무제 전 대법관을 비롯해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 10여 명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박보영 전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사법연수원에서 후배 교육을 담당하다 지역 법관으로 부임해 화제가 됐다.

조무제 전 대법관을 떠올린 건 헌법재판관 청문회를 보면서다. 최고의 법관이라는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된 이들의 이력은 법복이 부끄러울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고위공무원 인사원칙을 제시했다. 위장 전입,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했다. 집권 후 장관급 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등이 줄줄이 불거지자 음주 운전과 성범죄를 보태 7대 인사 기준을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된 헌법재판관 후보들을 보자. 분명히 내부 검증 절차를 거쳤을 텐데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이은애 후보는 무려 8번의 위장전입이 사실로 확인됐다. 한두 번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지만 8번이면 상습범이다. 청와대가 배제 기준으로 정한 2005년 7월 이후만 꼽아도 두 차례다. 아파트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액수도 적지 않다. 3억 원 가까이 축소 신고했다. 명백한 탈세다. 김기영 후보도 배우자와 자녀가 3차례 위장전입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중 두 번은 2005년 7월 이후다.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된다. 죗값을 결정하는 판사들이 범법자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석태 후보자 역시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있다.

청문회장에서 후보자들은 연신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변명도 석연치 않다. 어머니가 했다든가 처가 했다고 둘러댔다. ‘말하기 어려운 가정사’라며 회피하기도 했다. 헌법재판관 후보들 준법정신이 이 지경이라니 너무 낯이 뜨겁다.

조 전 대법관의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그는 대법관 시절 전세 보증금 2000만 원짜리 원룸에 거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퇴임 때는 오랜 관행이던 전별금을 법원도서관에 기부했다. 1998년 대법관이 됐을 때 전 재산 7200여만 원을 신고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부산법원조정센터 조정위원으로 근무할 때는 ‘하는 일에 비해 수당이 과하다’며 스스로 수당을 절반 삭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동아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돈이 생길 때마다 후배들 장학금으로 내는 등 여전히 청빈한 삶을 살고 있다.

조 전 대법관은 이번 헌법재판관 후보 청문회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판거래로 법조계 전체가 손가락질당하고 뒤숭숭한 때 부끄러운 후배들을 보며 참담했을 것이다. 집 한 칸 붙들고 투기라고는 모르고 사는 서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터.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체념한 이도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어떤 심정일까 싶다.

민주당과 대법원장은 대체 뭘 보고 이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한 것일까. 정부의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굳이 이들을 추천할 만큼 인재풀이 바닥인 건가. 검증이 부실해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우리 편이라고 추천했다면 괘씸한 노릇이다. ‘내로남불’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7대 인사 기준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기준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모든 법관이 청빈(淸貧)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빈(貧)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복을 입은 자라면 청빈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렴하게는 살아야 하지 않겠나. 당사자도, 이들을 감싸기 급급한 민주당도 부끄러워할 일이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