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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고요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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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20 19:19: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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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화작가이면서 삽화가인 타샤 튜더의 삶을 다룬 영화 ‘타샤 튜더’를 봤다. 상영관에서 나올 즈음엔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높고 맑아졌다. 타샤 튜더가 세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동화작가이면서 30만 평의 정원을 가꾼 자연주의자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로 만난 타샤 튜더의 삶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살아온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1915년 보스턴에서 출생한 그녀는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안은 아인슈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에머슨 등과 교류할 정도로 명문가였으나 아홉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부모님이 잘 아는 지인의 집에 맡겨졌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녀는 소를 키우고, 화초를 가꾸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물론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녀는 토끼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을 출간한 것은 그녀가 스물세 살 때였다. 그러나 곧바로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갖고 출간을 위해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당신의 그림은 꽃을 그린 카탈로그 같군요”라는 비판을 참아내야 했다. 1957년에 ‘1은 하나’를 펴내 칼데콧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 이후에 그녀의 그림은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실리기도 했고, 100여 권의 그림책을 펴냈다.

타샤 튜더가 인세 수익으로 버몬트주 산골의 30만 평의 대지를 사들인 것은 1971년이었다. 쉰여섯 살의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꿨다.

타샤 튜더의 일상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잡초를 뽑고, 다시 꽃 피는 것을 돕기 위해서 시든 꽃을 꺾어주고, 씨앗을 받고, 알뿌리 식물을 심고, 정원에 나 있는 좁은 길을 맨발로 걸으며 산책을 즐겼다. 그녀는 오후 시간에 차 마시는 일에 크게 만족했다. 매일 그림을 그렸고, 교양을 쌓기 위해서 문명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다. 비둘기를 기르기도 했는데, 어린 비둘기를 그녀가 입은 스웨터 품속에 넣어 키우며 순하게 길들이기도 했다.

타샤 튜더는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였다. 책을 읽는 경험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다른 공간이란 환상의 세계를 뜻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인형을 직접 만들어 인형놀이를 하는 것을 특별히 즐기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몇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그녀가 정원 가꾸기에 대해 한 말들은 땀과 노동으로부터 깨달은 것이었기에 귀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멋진 정원을 갖는 일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30년 전에 사과나무와 꽃들을 심었어요. 하루아침에 정원이 되는 줄 알지만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요. 하지만 뭐든 간절히 바라면 이뤄져요. 달나라에 간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성급함을 버리고 조금씩 조금씩 진척시켜나가다 보면, 또 간곡하게 바라면서 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그녀는 화초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심지어 초록이라는 색(色)은 단일의, 하나의 색이 아니어서 다양한 초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초록들이 어울려서 정원의 색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그녀는 일할 때 참을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참고 나면 그것에 대한 보상이 따른다고 했다. 일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할 것을 권유하면서 “1840년대에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하세요”라며 멋진 비유의 문장을 사용했다.

타샤 튜더는 정원의 살림을 돌보면서 깨우친 것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작약이 움트고, 자라고, 꽃피는 시간을 함께 사는 일에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늙는 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금방 잊어버린다는 불편함을 빼곤 늙은 지금이 행복해요.”

타샤 튜더가 구사하는 긍정의 언어들도 감명적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 말할 때 “귀여워라!” “따뜻해서 좋구나!”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사랑스러워라!”와 같은 말들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구박하고, 비난하는 말들이 아니라 칭찬하고 응원하는 말들을 사용했다. 물론 그녀를 맞는 사람들의 화답 또한 미소와 행복이 넘치는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타샤 튜더의 모든 일상 대화가 볕과 같은 밝음과 꽃과 같은 환함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특히 그녀의 한마디 말이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게 되었는데, 그 말은 “고요한 물”이라는 표현이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당신은 무엇을 가장 믿어요?”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주저함이 없이 “고요한 물이에요! 이 말은 제가 지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무엇을 믿느냐는 질문은 무엇에 가장 의지하고, 안심과 안정과 구원을 얻느냐는 질문 같았다.

그렇다면 ‘고요한 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의 고요한 수면처럼 담담한 내면을, 잘 제어한 내면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분노와 증오와 같은 화염(火焰)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에 이해와 사랑과 용서와 평화가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재촉하는 삶보다는 적은 욕심으로, 느린 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녀는 “바쁘게 살다 보면 놓치는 게 많아요”라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살 것을 당부했다. 내면에 귀 기울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당부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어서 좋다고 말했던 타샤 튜더. 그녀는 92세의 나이로 2008년에 영면했다. 그녀가 정성껏 가꾼 자연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30만 평이라는 정원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정원을 가꾸면서 몸소 얻은 생활의 철학 같은 것이 소중할 것인데, 그녀가 언급한 ‘고요한 물’이라는 말은, 가꾸어야 할 정신의 어떤 높은 상태를 가리키는 이 말은 오래오래 내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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