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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유라시아 관문’ 부산은 뭘 준비하나 /박창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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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26 20:24:0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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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선장시인 김성식의 시 중에 ‘청진항’이란 게 있다. ‘배를 타다 싫증 나면/까짓것/청진항 도선사가 되는 거야//오호츠크해에서 밀려 나온/아침 해류와/동지나해에서 기어온/저녁 해류를/손끝으로 만져가며//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큰 배를/몰고 들어갈 때…’.

바다 사나이다운 호탕한 기질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청진항’은 한국 해양시의 원형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청진항’이 내뿜는 시의 고동은 여전히 힘차다.

청진항에 가볼 순 없을까. 남북 정상이 손잡고 백두산을 오른 벅찬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남북 간 문화교류의 물꼬가 터지면 ‘청진항’이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청진항은 현재 북한의 최대 항구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오사카·고베·도쿄 등지와의 항로가 열려 있다. 부산의 배가 못 가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한 ‘흥남철수’도 주목할 교류 콘텐츠다. 흥남철수는 장진호 전투와 더불어 숨 막히는 6·25전쟁 스토리다. 흥남 철수작전에 동원된 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흥남철수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남의 ‘그때 그 자리’를 동북아 평화의 성지로 만들 수 있다면!

남북은 지금 평화를 위한 감동 모티브를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청진항이나 흥남철수는 참신한 문화적 접근 전략이 될 수 있다. 북한 청진시와 부산이 자매결연을 하고 청진시 청사에 ‘청진항’ 시가 걸린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 아이디어는 새로운 게 아니다. 문화계 일각에서 심심찮게 거론해온 이야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이템을 남북 교류의 의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필요 충분한 ‘그릇’과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 시점, 부산이 가장 주력해야 할 이슈는 유라시아 관문도시 위상 구축이다. 얼마 전 부산시가 발표한 5개 분야 35개 사업의 남북 상생 교류협력 프로젝트에 관문도시가 언급되고 있지만, 솔직히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신북방 정책의 시·종점, 유라시아 관문도시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그림과 콘텐츠, 스케일이 나와야 한다.
유라시아를 호령할 ‘철의 실크로드’는 한반도 20~30배에 달하는 경제영토를 끌어안는 세기적 프로젝트다. 지리적 이점을 들어 부산 신항 또는 부산역이 시·종점이 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다. ‘유라시아 철도 시·종점 부산역’은 커버리지가 동북아를 넘어선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남북관계와 물류(物流)와 문류(文流)를 논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시의 시야는 동북아 속에 머물러 있다. ‘동북아 해양수도’라는 그릇으로 유라시아와 글로벌을 담으려 한다. 유라시아 관문은 ‘글로벌 해양수도’로 풀어야 맥이 통한다.

‘유라시아 철도 출발역’은 어디에,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부산은 이에 대한 답은커녕 비전조차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의 ‘남북 상생 교류협력 프로젝트’ 어디에도 이런 고민이 없다. 그저 당위만, 기대치만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유라시아 철도 출발역’은 전국 지자체의 뜨거운 관심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이 향후 유라시아 철도의 시·종점역이 될 것이라서 서울역 이름을 ‘대륙 철도 출발역’으로 바꾸고 싶다”고 천명한 터다. KTX가 지나는 광명시, 오송시 등에서도 이슈 선점에 나섰다. 광명시는 2022년을 겨냥, 광명역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유라시아 고속열차 승차권 신청 행사까지 진행했다.

가수 김범룡이 내놓은 신곡 ‘나는 로마로 간다’에는 남북 철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로마까지 가는 여정이 나온다. 노래 속엔 유라시아 열차가 서울에서 출발한다. 가볍게 볼 대목이 아니다. 유라시아 문화콘텐츠 선점 전략에서 부산이 잽 한방을 얻어맞은 모습이다.

‘유라시아 관문’은 결코 그냥 열리지 않는다. 그냥 열린다 해도 준비가 없을 경우 국제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국제정세와 시대정신을 정확히 읽고, 글로컬(Glocal) 혜안으로 미래를 준비할 때 관문은 비로소 열린다. 필요하다면 전략적으로 한일 해저터널 논의를 발화시킬 수도 있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결절점, 세계적 항구, 길의 도시 부산이 거대한 시험에 빠져들고 있다. 부산시가 당장 현안 연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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