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서울에서 온 은행원 친구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다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대화 주제는 요즘 최대 관심사인 부동산. 그 친구의 말은 이랬다. “내가 20년 전 부산에서 서울로 처음 발령받으니 강남과 김포공항 근처인 강서지역 영업점을 놓고 택일하라고 하더군. 고민 끝에 먼저 서울 근무를 하던 아내가 있던 강서지역을 택했지. 지금 두 곳의 같은 평수 아파트 가격이 최고 5배는 차이 나는 것 같아.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어.”
친구는 말을 던져놓고 좀 어색했는지 쓴 소주를 단숨에 털어넣으며 화제를 바꿔보려 했지만 씁쓸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부동산이 뭐기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서울,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부는 부동산 광풍은 ‘부동산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후유증이 심각하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모처럼 만난 형제 친척 간에 부동산은 금기어가 된 집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모처럼 온 눈치 없는 형제가 “아파트값이 몇억 올랐다”고 으스대다가 명절 분위기가 냉랭해졌다는 말도 들린다.
‘서울발 아파트값 광풍’은 단순한 재산 가치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분열 양상으로까지 확대될 공산이 커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과거 ‘강남=성공 신화’는 서울지역 내 강남과 강북 간의 국한된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비이성적인 도그마에 비수도권 주민까지 흡수됐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축적은 죄가 아니다. 다만, 얼마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했느냐가 문제이다. 경제학의 창시자격인 애덤 스미스는 임금과 지대, 이윤을 본원적 소득이라고 했다. 나머지 소득은 이 본원적 소득에서 파생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노동을 가장 중요시했다. 노동을 대가로 얻는 임금을 제외하고 지대와 이윤을 통해 얻는 소득을 불로소득으로 분류했다. 불로소득자들이 노동력을 지불하지 않고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유는 한정된 자원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득권이 파생된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직장에서 쓴 소주를 나누던 동료가,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 못했던 친구가, 심지어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가 아파트를 사서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으면 면전에서 축하지만 돌아서면 뭔가 휑한 게 장삼이사의 마음이다. 셈 밝은 ‘사촌’들은 이를 이용할 줄 알았고 범부(凡夫)들은 배앓이를 하는 것이다.
사실 불로소득의 역사는 인류 탄생의 역사와 함께할 만큼 오래됐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다. 정책 당국자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케인스학파의 태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자로 생활하는 자들은 안락사시켜야 한다”며 독설을 퍼부었지만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오히려 더 불어났다. 공정사회를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현 정부도 지난해 8·2대책에 이어 올해 9·13대책까지 무려 8차례나 강력한 처방을 들이대고 있지만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부동산 대책에 대해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공언하지만 현재까지는 공염불에 그친다. 그게 불로소득일지라도 자본을 축적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문제만큼은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은 몇 해 전부터 ‘부동산의 대세 하락기가 시작됐다’며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계령과 함께 금융자산으로 투자를 유도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이들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이다. 서울 부동산시장을 놓고 정부와 투기자본이 싸우는 사이 지방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 됐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지방 부동산은 붕괴됐다. 여기에 올해 다시 9·13대책이 추가돼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 심리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부산을 포함한 영남권의 타격이 크다. 최근 10개월간 울산(-14.5%), 경남(-9.0%), 경북(-6.2%), 부산(-6.0%) 등 영남 지역 아파트값은 크게 떨어졌다. 지난 8월 부산의 주택매매거래량은 367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정부는 고삐 풀린 서울 집값만 보지 말고 꽁꽁 얼어붙은 비수도권의 부동산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부산에서 청약 조정대상지역 해제 등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 계획된 분양 물량도 부울경이 가장 많다. 이러는 새 지역 경제는 숨이 멎을 지경이다.
‘미친 집값’으로 파생된 부동산 양극화는 현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지역·계층 양극화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조성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고 있다. 남북 화해도 좋고 비핵화도 좋지만 미친 집값의 사회적 갈등 비용은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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