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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남북 협력의 지방자치화’ 부산이 앞장서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30 18:54:55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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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남북 교류는 서울·평양 간 중앙 단위에 치우쳤다. 남북 교류도 지역 단위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젠 ‘남북 교류의 지방자치화’에 눈을 돌릴 때다. 동북아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이 선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문화 교류가 돼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평양 가던 날, 부산시도 ‘남북교류협력 프로젝트’를 밝혔다. 5개 분야, 16개 과제, 35개 사업이나 내놨는데 지나치게 백화점식이다. 북한의 실정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다.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우선순위부터 먼저 정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의 마중물 삼아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한마디. 얼마 전 부산의 한 작가단체가 펴내는 계간문예지의 대담에 불려 나간 적이 있다. 주제는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의 문화교류를 생각하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주섬주섬 옮겼다. “문화예술은 남북 화해·협력의 선발대랄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남북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당국자들이 서명해 교환하는 선언문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싹틀 때 시작되는 게 아니겠느냐.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문화 교류 역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들뜨거나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해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운운.

나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남북 교류는 서울과 평양 간 중앙 단위에 치우쳤던 게 사실이다. 남북 교류도 중앙정부, 중앙의 문화권력에 좌우될 게 아니라 지역 단위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남북 교류의 지방자치화’에 눈을 돌릴 때다. 그렇게 보면, 한국 제2의 도시일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해양수도를 지향한다는 부산이 선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문화 교류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 이후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서 남한의 경제인들과 문화인들이 수행한 걸 지켜봤던 터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엔 문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논의’의 물꼬를 다시 텄다. 10월쯤 2차 북미회담이 열리면 핵 폐기 프로세서와 종전선언을 의제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터. 우여곡절이야 앞으로도 있을 거고, 인내심도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선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거다. 그와 함께 경제, 사회, 문화 등 민간 영역에서도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질 수밖에.

내가 서두에서 ‘남북 교류의 지방자치화’란 화두(?)를 들먹였지만, 아닌 게 아니라 각 광역지자체도 남북 교류에 나설 채비를 차리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은 수도라는 이점을 내세워 평양과의 교류에 나설 태세다. 강원도도 접경지역이란 특수성을 내세워 비무장지대를 고리 삼아 일을 벌일 눈치이기도 하다.

부산시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이 평양으로 날아가던 날, 오거돈 부산시장이 ‘남북교류협력 프로젝트’를 발표한 터다. 원산과 나진을 경유하는 부산발 유럽행 열차 운행 등 부산을 기점으로 한 철도·항만 연계망 구축, 나진-하산프로젝트 참여를 통한 한·북·중·러 육해상 복합 물류 루트 활성화 등등. 부산항만공사와 공동으로 나진항 개발을 추진하고, 근해어선의 북한해역 입어와 수산물 교역·가공 산업의 교류, 북한 노후 어선 및 어로 장비 현대화, 유휴 조선 인력을 활용한 중소형 조선소 북한 진출 등의 포부(?)도 내놓았다.

떡상도 받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느낌이 전혀 없지야 않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에 맞춰 부산시 나름의 청사진을 펼쳐 보인 건 좋은 일이다. 어차피 한국 두 번째 도시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부산의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지 않나.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후쿠오카,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동아시아의 해양거점으로 발돋움하려는 전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연결기지로서의 부산의 미래를 그리기도 해야 할 터. 그렇게 보면 그것을 위한 터 다지기로 북한 항구도시와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당연한 수순이겠다. 늑장 부리다가는 인천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을 테니.

그런데 부산시가 내놓은 ‘남북교류협력 프로젝트’란 걸 뜯어보니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5개 분야, 16개 과제, 35개 사업을 추진한다는데 지나치게 백화점식이란 인상을 받았다. 죄다 잘되면 좋은 일이겠지만 구체적인 추진 전략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늘어놓은 수준이라면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거다. 청사진이 구체화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할 거다. 무엇보다도 ‘비핵화 완료-대북제재 철회’란 산이 가로막고 있지 않나. 그 문제가 풀려야 민간 교류든, 경제협력이든 빗장이 풀리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해도 발표부터 하자는 식으로 너무 많은 사업을 구체적 추진 전략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내면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똑똑한 놈 하나를 골라잡는 건 서울 사람의 부동산 투기 작전만은 아니다. 대북교류도 마찬가지일 터다. 해양·항만·수산은 물론, 금융·정보통신·전시 및 컨벤션 산업에도 진출하겠다, 교통·안전 분야의 스마트시티 사업을 펼치겠다, 북한의 도시재생 사업에도 참여하겠다 등등 너무 복잡하고 가짓수가 많다. 늘 하는 소리를 재탕한다고나 할까, 냉장고에 넣어둔 묵은 반찬을 잔뜩 꺼내 늘어놓는다고 어디 식탁이 풍성해지겠나. 진짜 맛집엔 주력 메뉴가 한두 개뿐인 것을.

아직은 손가락 하나 들이미는 단계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앞을 내다보는 꼼꼼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북한 도시와의 교류로 부산이 얻어내려는 게 무언지부터 정리할 일이다. ‘동북아 해양수도’로 발돋움하기 위해 원산이나 청진을 교역과 물류의 중간 거점으로 삼겠다든지, 부산과 대륙철도와 연결하는 중간 기착지로 삼겠다든지 전략이 명확해야 구체적 사업 목표도 정해지는 법이 아니겠나.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내는 것. 글쎄, 원산이나 청진 같은 도시가 지금 금융이나 정보통신, 컨벤션 사업을 부산과 함께할 처지일까. 오래전 개성을 잠깐 둘러본 내 경험으로는 북한의 지방도시는 우리의 19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북한 정권이 한정된 자원을 평양에만 쏟아부었기 때문일 테지만, 북한 정권이 지금 단계에서 지방도시까지 전면 공개하는 걸 달가워할지도 분명치 않다. 우선 그런 것부터 확인하고 그 도시들이 지금 부산에서 얻고 싶어 하는 게 뭔가부터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교류든, 협력이든, 사업 진출이든 가능할 게 아니겠나.

덧붙일 게 있다. 교류와 협력엔 단계가 있는 법이다. 원산이 됐든, 청진이 됐든 그 사람들과의 인적 교류에서부터 일이 시작돼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스포츠나 예술 교류에서부터 늘 일이 시작되지 않았나. 부산시가 일을 도모하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글쎄, 이번 프로젝트에도 원산과 해수욕장 자매결연하기, 바다미술제 교환 전시, 유라시아 청년대장정, 부산국제영화제에 북한 영화인 초청 따위가 망라돼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쪽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하고, 그나마 발표를 위해 급조한 인상이 역력하다.

내 생각엔 부산시가 진짜로 북한 도시와의 교류·협력, 그리고 사업 진출에의 의욕을 가지고 있다면 민간과 학계 전문가를 대거 포함한 ‘태스크포스’를 꾸려야 할 것 같다. 전반적인 북한 사정과 교류 예상도시에 대한 정밀한 분석, 실현 가능한 사업계획의 우선순위와 단계적 추진 방안 등등을 논의해 보란 말이다. 가능하다면 비공식 루트로라도 원산 같은 도시와 대화 창구를 뚫어보려고 시도할 필요도 있겠다. 그 전초전이 될 문화 예술 분야의 교류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 보라. 그런 일일랑 부산문화재단 같은 곳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하나 더 권하고 싶은 일은 오는 연말쯤 예정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맞춰 ‘남북 지방도시 간 교류·협력’을 의제의 하나로 채택하도록 정부에 정식으로 요구해 보라는 것. 부산이 먼저 제기하면 다른 지자체도 호응할 거다. 그러면 당장 이번에라도 주 의제는 몰라도 부속 의제쯤으론 상정될 수 있지 않을까. 평양 방문엔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지사가 동행했으니 서울 회담에선 부산시장에게도 논의를 위한 자리 하나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다.

다시 요약하자면, 남북 교류에서도 중앙집권을 넘어서서 지방자치를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리고 그 주도권을 부산이 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고 기웃거리기보다는 먼저 밥상을 차려야 할 일이다. 시민들은 발표를 위한 발표가 아니라 진짜로 뛰어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오거돈 시장과 부산시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하기에 따라선 내년 봄쯤 부산문화회관에서 ‘부산-원산 예술인 합동 공연’을 열 수도 있다. ‘남북의 지역문학 발전 방안’을 주제로 두 도시의 문학인들이 원산서 합동 심포지엄을 열지 못하란 법도 어디 있겠나. 우선 할 수 있는 것을 추려 현실로 옮겨 보라.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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