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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경쟁의 어두운 이면 /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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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30 18:50:3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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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의 삼선슬리퍼

입학을 담당하는 학교 일을 맡은 지라, 고등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많다. 직업 때문에 젊은 대학생들을 항상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린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면하는 것 또한 색다른 기쁨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공통된 풍광(風光)이 있으니, 어느 학교를 가든, 학생 모두가 하나같이 삼선슬리퍼를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학교든, 남학교든, 남녀공학이든 다르지 않다. 미루어 짐작하여, 아침부터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운동화나 구두보다는 이 삼선슬리퍼를 신고 생활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다는 추론을 해보았다.

■야구장 마운드의 페트병

달포 전, 일본에서 개최된 한 청소년 야구대회에서 우리 대표 팀이 우승을 했다. 대개 한일전 승리는 더욱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고시엔(甲子園) 야구대회 본선에 나가기 위해 일본의 3781개 고교가 예선을 치른다고 한다. 그런 일본에 이겼으니 선수들 자신도 대견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우승 이후, 선수들의 행동에 주최 측이 꽤나 불쾌해했단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채, 프로선수처럼 마운드에 페트병 물을 뿌린 후, 그 페트병을 내팽개친 채로 경기장을 떠났단다. 일본의 관계자들이 그 페트병을 모조리 치웠고, 한동안 한국 선수들의 무례함이 회자되었단다.

■대학의 음악 동아리 공연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은 대학생활의 백미라 할 것이다. 구직활동에 아르바이트에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 학기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갈고닦은 동아리 활동의 실력을 뽐내는 기회를 가진다. 특히, 음악 동아리의 공연은 많은 관심을 끈다. 문제는 음악 동아리의 공연이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다. 수업 중인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 동아리의 과한 노랫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연하는 입장에서는 공연이 전부이다 보니, 다른 학생들의 입장은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수업 중인 학생들은 도리 없이 강의실 창문을 닫아야 할 수밖에.

세 가지 에피소드는 얼핏 연관 없어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경쟁이라는 어두운 면을 함께 표상한다. 실상, 삼선슬리퍼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한국 사회 전반을 점령하고 있다. 본래 기능과는 달리, 많은 젊은이가 수업이든, 식당이든, 공항이든 때와 장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삼선슬리퍼로 무장한다. 심지어 주민 센터나 구청의 일부 젊은 공무원까지 삼선슬리퍼를 신고 민원인을 대응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 행위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기야 슬리퍼 착용 이면에는 “공부 잘해서 명문대학교만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으니 그런 젊은이들을 나무라서 무엇 하겠는가?

운동장 마운드에 물을 뿌리고 페트병을 가져가지 않는 것도 그러하다. 말 그대로 야구만 잘하면 모든 것이 허여(許與)된다.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어서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다른 ‘사소한’ 실수는 묻히게 된다. 우승은 모든 것을 삼키는 괴물에 다름 아니다. 선수인 나는 사소한 경기장의 청결과 상관 없어지고, 청소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된다. 내가, 우리가 우승했는데 누가 우리를 저어할 것인가? 남겨진 페트병의 운운 등은 경기에 진 자의 변명과 불평에 불과하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모든 것이 용납되는 용광로가 된다. 이러한 생각이 단지 어린 학생만의 탓일까? 천만에.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어른들이 만들어온 사회적 합의의 이면에 불과하다.

내가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행동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경쟁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나 입장을 가늠할 여유나 이유가 없으니까. 나도 교실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공부를 방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힘든 사유가 된다. 지금은 내가 더 중요하니 그냥 그렇게 내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 남이야 어떻든 간에. “내가 전봇대로 무엇을 하던 무슨 상관이냐”는 자기중심성 또한 경쟁 사회의 또 다른 구호에 불과하다. 수단과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용납된다. 나만 편안하고, 나만 이기고, 나만 잘나면, 누가 불편해지고, 누가 지게 되고, 누가 못난 사람이 되는지? 궁금하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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