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오전 8시40분. 성남비행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행 특별기에 몸을 실었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레드카펫과 한복을 입은 수많은 환영 인파가 보였다. 나를 포함해 문화·예술·체육인들이 소형버스 14호에 올랐다. 가수 지코·알리·에일리와 차범근 감독이 함께 탔다. 박종화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동승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장했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는 역사적인 장면을 30ｍ도 안 되는 거리에서 지켜보다니. 가슴이 뭉클했다. 눈물도 났다.

우리는 고려호텔로 가는 길 내내 평양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끝도 없이 손과 꽃다발을 흔들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한 점심을 먹은 일행은 바로 옥류아동병원으로 갔다. 첫 수행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동행했다. 나는 그곳에서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를 처음 만났다. 김정숙 여사는 우리를 한 사람씩 소개했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시설이 부족하다”고 겸손해했다.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을 둘러보고 평양대극장으로 이동해 북한이 준비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도 즐겼다. ‘아리랑’ 연주에 이어 가수 최진희의 ‘뒤늦은 후회’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같은 남측의 대중가요가 나오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남북의 가요가 한데 어우러진 하모니의 장이었다.

김정은 위원장 내외가 초대한 만찬도 즐거웠다. 육·해·공의 식재료가 모두 포함된 고급음식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두 정상 내외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두시간이 넘는 만찬을 끝으로 평양에서의 첫날 긴 일정이 끝났다.

다음 날은 오전 10시부터 김정숙 여사와 동행해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장구와 수예를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북한 선수들의 다이빙 실력도 견학했다. 이곳에선 5000여 명이 어린 선수가 매일 자신의 특기를 훈련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영재교육센터를 보니 체육인으로서 조금 부러웠다.

점심 메뉴는 옥류관 냉면이었다. ‘평양냉면은 식초를 뿌려 먹어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대로 했더니 한결 맛이 좋았다. 나는 13년 전인 2005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맛본 옥류관 냉면은 밍밍했던 것 같다. 두 정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에 냉면이 한결 맛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교원대학교와 만수대창작사를 둘러보고 저녁에 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을 찾았다. 1만7000명이 펼치는 카드섹션과 집단체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15만 명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 말미에 문 대통령은 “우리 조국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안전한 한반도를 후손들에게 주자고 하자 모든 평양시민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집단체조를 시작하기 전 대형 한반도기가 게양될 때도 내 가슴의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사실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북한에서 경험했던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북한은 많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의 모습에는 13년 전보다 여유가 묻어났다. 휴대전화를 들고 걷는 행인들과 부쩍 많아진 상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일행을 대하는 모습도 예전보다 밝고 친절했다. 남북관계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양과 백두산을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질 것으로 믿는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한민국 역시 더 특별해지리라 기대한다. 여전히 가슴이 뛴다.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