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오경아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8-10-05 19:01:24
| 본지 19면

‘몇 다리만 건너면 우린 모두는 다 아는 사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사회적 인터넷망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21세기의 우리는 한 다리도 미처 안 건너는 듯하다. SNS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분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라고 묻는 일이 누구라도 종종 일어나는 일기에.

그런데 우리만 이런 것은 아니다. 이 지구의 자연 생태계도 엉뚱한 듯싶지만,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산다.

한 과학자가 이런 주장을 했다. “늑대가 숲을 사라지게 했다.” 억측이 될 수도 있는 이 말은 실제로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한때 원주민들이 살았던 북아메리카의 숲에서는 원래 늑대와 여우 등의 생태계 최상위 포유류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포유류를 두려워한 인간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짧은 시간에 걸쳐 사냥과 포획을 하면서 늑대가 사라지게 된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었다.

늑대가 사라지자 야생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들소의 세상이 찾아왔다. 들소들은 수십,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천적이 없는 상황을 만끽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비극이 찾아왔다. 뜯어먹을 풀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자, 들소들끼리의 경쟁이 심해져 생존이 점점 힘들어졌다. 늑대가 있을 때보다 오히려 힘겨운 배고픔의 난관이 시작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급격히 수가 늘어난 들소는 풀이 미처 자랄 틈도 없이 먹어 치워 시간을 두고 자라야 하는 나무들의 생존이 힘들어졌다. 나무가 성장하지 않는 숲은 또 다른 문제도 야기했다. 나무는 흙 속에 들어가 뿌리로 단단히 흙을 움켜쥐어 홍수를 막아준다. 그러나 나무가 사라지자 강이 범람해 거침없이 주변을 황폐화시키면서 결국은 숲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제야 생태계의 이상을 자각한 사람들은 늑대를 다시 숲으로 데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라진 늑대를 다시 숲속에 넣어주고 몇 년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들소의 수가 줄어들면서 초원이 되살아났고, 초원이 되살아나자 나무들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결국 30년이 흐른 후에는 어느 정도의 숲의 형태가 다시 갖춰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다른 예도 있다. 연어가 올라오는 강이 있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는 산란기를 맞으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다시 올라온다. 이때를 노려 갈색곰과 수달, 비버들이 연어를 먹기 위해 강가에 머문다. 겨울이 오기 전 연어를 듬뿍 먹은 포유류들은 소화를 시켜 뒤 배설을 하게 되는데 이 배설물 속에는 물고기에게서만 나오는 질소 성분이 들어 있다. 이 질소가 바로 강가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셈이다.

또 산란을 마친 후 자연상태에서 생을 마감한 연어도 죽어서 강물에 질소 영양분을 남기는데 이것이 바로 바다 플랑크톤을 만들어내는영양분이 된다. 결국 연어가 남긴 질소가 플랑크톤을 만들어 다른 바다 생명체의 귀중한 먹을 거리가 되는 셈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의 질소를 흡수한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에 비해 성장이 월등하게 빠르고 건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연어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숲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연어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포유류도 함께 줄어들고 결국은 나무의 성장도 둔화되거나 숲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물고기의 질소를 나무 나이테에서 검출한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은 농경지로 변화되거나 도시가 돼버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아주 오래전에는 강에서 연어가 살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주 중세에 건물의 목재로 쓰인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유럽은 이미 연어가 사라진 지 오래됐고, 숲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인간의 도시가 들어서 있다.

늑대가 홍수를 일으키고, 연어가 숲을 만들고! 너무 엉뚱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정말 이 지구의 상태계는 상관없을 것 같은 생명체가 너무나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서로 미치며 살아간다. 우리 인간도 이 생태계 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내 집 주변에서 사는 가로수들, 공원의 풀과 나무들, 뜻밖에 손님처럼 날아드는 야생의 새와 동물들 그리고 정원에서 늘 마주치게 되는 곤충들까지.

우리가 징그럽다, 위험하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이 생명체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거미줄보다 더 복잡한 끈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된 셈이다. 그 끈을 끊어버리게 되면 결국 그 끊어진 끈이 나를 향해 결론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참 사는 게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하고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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