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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학의 남루한 자화상 /정영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08 19:25:2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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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일면식도 없는 한 교수로부터 “남은 추석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학의 위상 회복을 위해 같이 노력해보았으면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대개 이런 경우는 대학 총장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을 때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차기 총장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있다는 뜻의 표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면부지의 교수가 필자에게 뜬금없이 대학의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는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총장감으로 지명도가 높은 명망 있는 교수가 흔치 않다. 그저 엇비슷한 수준의 교수들이기에 가능한 한 일찍 총장 선거에 관심을 표명하고 발품을 많이 팔아 자신의 존재를 구성원에게 알리는 게 장차 있을 선거에 유리하다. 어차피 발품을 팔기 위해서는 돈이 들기 때문에 선거 일정이 공표되기 전에 미리 발품을 파는 게 나중에 있을 공정 선거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총장으로 선택받기 힘들다. 물론 인품과 능력을 갖춘 명망 있는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선택받을 수 있다.

선거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정치적 행위로서 현실적으로 최선보다는 차선이나 차악의 인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치성보다는 상아탑이라는 학문적 상징성이 강조되는 대학에서 총장을 직선을 통해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진국의 대학들은 능력과 인물 중심으로 학내외의 명망가를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초빙한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다수 대학은 총장직선제를 강하게 요구한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매우 정치지향적임을 뜻한다. 초등학교 반장도 선거로 뽑는데 하물며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총장직선제를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본질적 요소로 여긴다. 총장직선제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고 희생자는 대학 민주화의 투사로 추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투표율이 90%를 상회할 정도로 총장선거에 대한 교수들의 열기는 뜨겁다. 대학의 본질적 임무와 동떨어진 과도한 정치지향성은 우리나라 대학들의 후진성과 지성적 성찰의 빈곤을 반영한다.

과도한 정치지향성의 또 다른 단면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행정 보직에 관심이 많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규정까지 바꾸어서 총장 후에 다시 교수진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어느 단과대학의 학장은 얼마나 보직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든지 취임식에서 학장 보직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적 역할보다 학장이나 총장의 행정 보직과 선거의 선호 등 정치 지향성이 상아탑의 학문적 상징성을 압도하는 게 우리나라 대학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대학은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사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뒤돌아볼 때,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왔다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의 병폐적 요소를 비판 없이 답습했던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필자는 자율과 민주화로 포장된 대학의 과도한 정치 지향성에서 그 잔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이러한 잔재는 우리에게 부족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대학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정면에는 ‘살아 있는 영혼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살아 있는 영혼’이란 비판적 성찰이라는 인간 정신의 고고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와 학생의 공동체이다. 대학은 알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지를 구현하며, 그 제일의 목적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 인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숙달하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정신병리학자인 칼 야스퍼스의 말이다.

오늘날의 대학은 비판적 자기성찰과 더불어 철학적 통찰을 통한 사회적, 역사적 인식 속에서 학문의 인간적, 사회적 의미 연관을 찾아야 한다. 칼 야스퍼스의 경구는 학문적 권위보다는 민주와 자율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과도한 정치지향성과 행정 권력에 경도된 우리나라 대학들의 반지성적 행태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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