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치민의 도리를 제시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대표작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만큼 얽힌 이야기가 많다. 다산과 살았던 시대는 다르지만, 베트남 건국의 영웅 호찌민(1890~1969)도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한때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는 뉴스가 매체를 탔던 적이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늘 목민심서를 가지고 다녔으며,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잤다는 것이다. 심지어 호찌민이 다산의 기일을 알아내 제사를 지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정확한 근거 없이 소개된 이런 뉴스들은 2006년 낭설로 밝혀졌다. 확인 요청을 받은 베트남 호찌민박물관 측이 “호찌민 주석의 유품 12만여 점 가운데 목민심서는 없었다”는 공식 답변을 내놓으면서다. 하지만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에 대한 여운은 여전하다. 목민심서의 지침과 호찌민의 삶이 판박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관리를 세 등급으로 분류하면서 최상급을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땐 한 필의 말만 가지고 조촐하게 가는 것’이라고 했다. 호찌민 역시 직접 폐타이어로 슬리퍼를 만들어 신었고, 지방 출장 때 손수 도시락을 싸 다녔으며, 주석 관저로 제공된 좋은 집을 마다한 채 관리인들이 묵는 오두막에서 살았다.

그래서일까. 다산의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시와 호찌민의 고향인 베트남 빈시는 2005년 자매결연을 한 뒤 지금까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남양주시가 10억 원을 지원해 빈시에 길이 920ｍ, 너비 18ｍ 도로를 개설한 뒤 ‘남양주 다산로’로 명명하는가 하면, 빈시에 무역센터를 열어 남양주 소재 기업들의 현지 진출을 돕고 있다. 비록 다산과 호찌민이 살아생전 인연은 없었지만, 두 사람의 민본·애민정신이 후세들에게 의기투합할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올해는 목민심서 간행 200주년이자, 다산이 18년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지 200년 되는 해이다. 다산은 1818년 10월 10일 유배지인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을 떠나 12일 후 남양주 생가(여유당)에 도착했다. “요즘 사목(司牧)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 목민심서 머리말에 적힌 다산의 꾸짖음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바래지 않는 고전의 향기이자 추억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