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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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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의 이야기가 세인들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질환은 없었지만 그는 나이가 들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구달은 안락사가 합법화된 스위스 병원에서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독극물 투입을 통해 약속대로 생을 마감했다.

노과학자가 스스로 결정한 죽음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는 안락사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한쪽에서는 인간에게는 ‘고귀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이는 존중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반대 쪽에서는 안락사는 비윤리적인 의료 행위이며 무한정 허용은 생명경시 풍조를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달이 선택한 안락사를 불허한다. 대신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존엄사법’이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정식 명칭이 ‘연명의료결정법’인 존엄사법은 입법화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사람 생명이 달린 문제라 쉽게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법 도입 때만 해도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나라 정서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환자에게 더 이상 치료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우려가 많아서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이달 3일까지 2만742명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부에서는 아직 의미를 두기 힘든 수치이기는 하지만 ‘웰 다잉(Well Dying)’을 대하는 사회의 인식이 그 만큼 변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물론 반론도 있다. 3분의 2가량(1만3752명·66.3%)은 의식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 가족이 내린 결정이니 오롯이 환자 스스로가 존엄사를 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특히 99.3%가 위독해진 이후에야 연명치료 중단을 결심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존엄사가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잘 먹고 잘사는 ‘웰빙(Well Being)’ 못지 않게 ‘웰다잉’도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계속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한 추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존엄사 문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뿌리 내릴 것이라는 예상은 조만간 현실이 될 듯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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