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에서 ‘BMW 음주운전 사고’가 일어난 지 2주가 지났다. 사고 피해자인 윤창호 씨는 여전히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다. 여론은 분노했고 윤 씨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을 만들자며 입법청원에도 나섰다.
어쩌면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윤 씨 사연을 언급하면서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가 되기도 한다”며 처벌 강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제는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할 때”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앞서 윤 씨 친구들이 만든 법안을 본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미 국회에는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이 계류 중이라고 하니, 대통령까지 나선 마당에 이제는 국회가 제 할 일을 해야 할 때다.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아마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괜찮다”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일 게다. 또 “술 마시고 몇 시간 지났으니까” “두 잔밖에 안 마셨으니까”라는 적당한 핑계도 한몫할 거고.
음주운전이 무서운 건 상습적이라는 데 있다. 첫 음주운전에서 대형사고를 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별일 있겠어’ 하고 습관적으로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다 안다. 하지만 막상 한 번 해보고 나면 ‘별거 아니네’라는 심리가 생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첫 음주운전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술 마셔도 사고 안 내고 운전할 수 있다’는 근자감이 생긴다.
더 큰 문제는 단속에 걸려도 벌금이나 벌점 등 처벌이 미약하니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게 된다. 이렇게 상습범의 길로 들어선다.
대부분의 음주 운전자가 상습범이라는 건 경찰청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5∼2017년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 총 6만3685건 중에 2만8009건(약 44%)이 재범 사고였다. 더 심각한 건 재범 사고 중에 1만1440건(약 41%)은 3회 이상 음주운전 사고를 낸 상습범이 낸 사고였다는 거다. 전체 음주운전 교통사고 중에서는 약 18%가 음주운전 전과 3범 이상의 사고였던 셈이다.
이는 음주운전이 술이나 담배처럼 중독이라는 의미다. 술·담배야 본인만 망가뜨리지만, 음주운전은 무고한 사람의 일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하지만 우리는 음주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음주에 관대한 건 법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음주운전과 관련된 지난 8일 울산지법의 선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기소된 50대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문제는 이 50대가 7차례의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대단히 높은 점, 이번이 일곱 번째 음주운전인 점 등을 감안하면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실형을 선고한다”면서도 형량은 고작 6개월에 그쳤다. 설사 사고를 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곱 번이면 상당 기간 사회와 격리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해운대 BMW 사고로 민심이 들끓는 와중에 나온 판결이라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듯 현재의 음주운전 처벌은 지나치게 약하다. 음주운전 2회까지는 초범으로 간주하고, 3회 이상 적발돼야 1년 이상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사망 또는 상해가 발생해도 징역 등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8%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형 정도로 풀려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무관용 처벌 원칙이 대세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음주 운전자가 사망사고를 낼 경우 살인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20년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음주운전이 줄어들지 않겠나.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국회의 처리를 기다려 볼 일이다.
처벌에 앞서 경찰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요즘은 도로에서 음주단속 하는 걸 보기 어렵다. 예전에 거의 매일 단속이 이뤄졌던 곳에서도 단속 경찰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음주 운전자들은 단속만 피하면 된다거나 운이 없어 걸렸다는 심리가 팽배한 데 이를 막을 단속마저 없는 거다. 언제 어디서 단속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있어야 운전대를 잡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중한 단속이 필요하다. 처벌이 강화되고 이와 함께 음주운전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윤 씨처럼 억울한 사고를 당하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검사와 대통령을 꿈꿨던 스물두 살의 윤창호 씨는 아직도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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