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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큰따옴표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동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16 19:05:1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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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띠 아니할쌔’.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이다. 여기엔 어리석은 백성에게 글자를 주고자 하는 임금의 자애로운 마음이 담겨 있다. 양반이 아니란 이유로 자신만의 온전한 이름도 가지지 못했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 28자의 주인이라는, 이 글자의 주인은 만든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될 것이란 강한 철학이 담겨 있다.

지난 9일은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이 되면 각종 포털 사이트의 영어 로고가 한글 디자인으로 바뀐다. 그날만큼은 촌스러움이 멋스러움이 된다. 10월의 한글은 소위 말해 시장에 먹히는 킬러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그중 제일은 한글로 된 폰트일 것이다. 이번 한글날에도 각 기업은 자신의 정체성과 특성을 담은 폰트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상업적 이용도 가능하니 웹디자인에 능숙한 청년세대들이 자발적으로 기업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도 당연지사. 기업 야놀자의 야체, 배달의민족의 한나체처럼 폰트는 기업의 이름이지만 폰트의 주인은 쓰는 사람이란 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왜 뜬금없이 한글의 주인과 폰트의 주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하실 테다. 이건 신문기사를 보며 늘 가졌던 하나의 의구심과 연결된다. 특정 인물이 나오는 기사의 헤드라인은 대부분 큰따옴표의 인용구로 표현된다. 이런 식이다. 지난 12일 1면 기사의 내용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담겨 있고, 헤드라인은 ‘트럼프 “한국 5·24 해제 땐 미국 승인받아야” 발언 격론’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미국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은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과 기사의 헤드라인을 비교해보자. 엄밀히 따져보자면 헤드라인에 있는 큰따옴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 아니다. 더욱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의 표현과 ‘승인받아야’ 한다는 권위적 표현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강도도 다르다.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기사의 내용을 압축시켜 설명할 필요엔 공감하지만, 정치적인 발언일수록 어미 하나에, 피동형의 뉘앙스 하나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국내 정치인의 발언 또한 여야 가릴 것 없이 자극적으로 편집된 헤드라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언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인 분위기와 온도가 편집자의 단어 선택에 따라 발화자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담긴다면 그것은 과연 팩트를 전하는 기사라 할 수 있을까. 글의 주인과 말의 주인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 뉴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는 동일하다. 터널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노동자가 인근 초등학교 캠프에서 날린 풍등을 주워 다시 불을 붙여 날렸다가 저유소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 접한 국제신문의 인터넷 기사 제목은 이러했다. ‘저유소 화재 스리랑카 근로자 벌금 1700만 원에 민사 배상까지… “평생 한국서 일할 판”’. 여기서 큰따옴표 안에 있는 발언은 누가 한 말인가. 내용을 보면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한 발언 같지만 기사 내용 어디에도 스리랑카 노동자의 말은 담겨 있지 않다. 다른 기사를 찾아보아도 화재로 인해 “평생 한국에서 일할 판”이라는 스리랑카 노동자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 저 따옴표 안의 말은 누구의 의견을 담은 것이란 말인가.

‘헤드라인 저널리즘’이란 말이 있다. 명확히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짧은 헤드라인이 담고 있는 메시지성에 주목된 논의다. 이젠 헤드라인이 기사의 내용만큼이나 이슈 전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듯 네이버에선 각 언론사의 이슈를 헤드라인을 통해 소개하는 ‘AI 헤드라인’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기사 내용보단 헤드라인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있으며, 그만큼 메시지의 왜곡과 오해가 커질 가능성도 커졌다.

글의 시작을 한글의 주인에 관해 꺼냈다. 글자의 권리는 글을 쓰는 사람에 달려 있다. 하지만 글과 말은 다르다. 타인이 뱉은 말을 글로 옮긴다면 왜곡이 없도록 신중해야만 한다. 큰따옴표란 문장부호를 쓰는 순간 그 문장의 주인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세상에 말을 한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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