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한 노인의 죽음이 화제가 됐다. 백수를 넘긴 리처드 새비지라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105세. 시카고를 홈으로 사용하는 미국프로야구 컵스의 마지막 우승 연도인 1908년 태어난 컵스의 골수팬인 그가 100년 넘게 리글리필드(컵스 구장)를 드나들었지만 컵스의 우승을 못 보고 눈을 감자 애도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당시 한국의 열혈 메이저리그 마니아들은 컵스를 ‘순종’이라고 불렀다. 조선 순종(純宗) 임금 2년 때 우승하고 아직 못한 것을 비꼬는 말이다. 이른바 ‘염소의 저주’에 걸려 100년 넘게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지만 컵스는 3년 뒤인 2016년 대망의 우승컵을 안으며 한을 씻었다. 무려 108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사카를 본거지로 둔 한신 타이거스의 불운이 유명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뛰고 있는 오승환이 활약했던 한신은 1985년 일본시리즈에 우승한 뒤 19명의 수상(연임 제외)이 바뀌도록 우승컵을 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엔 이들과 비견될 만한 팀으로 단연 롯데 자이언츠가 꼽힌다. 구도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강력한 팬심을 등에 업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우승과는 거리가 먼 공통점이 있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게 1992년. 문민화가 시작되기도 전인 노태우 대통령 때이다. 이후 대통령이 6명이나 바뀌었지만 챔피언 반지를 끼지 못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때가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롯데 우승 그다음 해인 1993년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것은 각각 2, 3년 뒤고.
이후 한국시리즈에 두 차례(1995년 1999년) 진출했지만 그것도 20세기의 일이다. 뉴밀레니엄 시대 롯데는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진출을 하지 못할 만큼 변방에 있었다. 우승 당시 프로 2년 차로 열혈 청년이었던 ‘부산 야구의 심장’ 박정태(현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는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다.
사실 부산 야구는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있었다. 광복 이전부터 경남고와 부산고라는 양대 산맥이 한국 야구를 지배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하기 전 3년간 야구대제전이라는 대회가 열렸다. 프로야구 개막에 앞선 일종의 이벤트 성격이었다. 졸업생들이 그 모교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이 대회에서 1979년, 1980년 2회 연속 김용희 최동원 등이 버틴 경남고가 우승했다. 3회 대회는 부산고가 아깝게 준우승에 그쳤다. 구도 팬들은 당연히 다음 해 시작되는 프로야구도 부산이 지배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롯데는 막상 프로야구가 개막하자 그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과거에는 투자에 인색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엔 삼성이 한 발짝 물러나는 사이 국내 프로야구무대에서 가장 ‘큰손’이다. 지난 3년 동안 롯데는 FA 계약에 486억 원 이상을 썼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게 벌써 26년 전이다. 부산지역 대학생 이하 층은 아직 우승의 감격을 누려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팬들 사이에선 ‘잃어버린 가을’을 찾아달라고 난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팬덤 중 하나가 롯데 팬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아빠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찾은 아이들은 아빠만큼 팬덤이 강하지 못하다. 이들의 눈엔 아빠만큼 자이언츠라는 상품이 매력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언제든 야구장을 떠날 수 있다.
부산에서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민들은 ‘부산=야구 도시’라는 데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다. 참다못한 일부 팬은 몇 해 전 시민구단을 만들려고 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적도 있다.
투자 대비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분명 조직 내부에 있다. 프런트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매번 감독 교체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 올 시즌도 끝나자 조원우 감독을 전격 해임하고 양상문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사령탑 교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이번에도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은 것 같다. ‘돌려막기’라는 비판도 있고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이쯤 되면 이제 대충 또 한 시즌 넘어가는 게 능사가 아닌 것 같다. 롯데 구단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한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명망 있는 외부 전문기관에 정밀 조직 진단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 결과에 따라 대수술에 가까운 팀 리빌딩을 진행하는 것이다.
롯데엔 ‘신은 부산에 최고의 팬과 최악의 팀을 함께 선물했다’는 불명예가 따라다닌다. 언제쯤 이런 지긋지긋한 주홍글씨의 딱지를 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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