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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일자리까지 도둑질하는 이 염치없는 세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28 19:18:36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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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직장이라고 해서 자식은 물론 조카, 처남, 처제까지 연줄을 동원해 밀어 넣겠다는 욕심이 가당키나 한가.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온 세상이 야단인 마당에 ‘신의 아들’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공기업에서 채용 비리 의혹이 터졌으니 국민들이 분노할밖에.

문재인 정권이 할 일은 취업의 문을 넓히는 일만이 아니다. 저희끼리만 문을 열어 주고 다른 사람에겐 문을 꽁꽁 닫아거는 세상, 금 밖의 사람을 밀어내면서 그들이 올라오려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세상을 혁파하는 일이 더 화급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 대한 검증을 강요(?)하는 사안이 터져 요즘 시끄럽다. ‘채용 비리’ 문제 말이다. ‘금 안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당겨 주지만 금 밖의 사람이 들어오려고 하면 모질게 떠밀어 버리는 현상’이랄까.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동원하자면 ‘사다리 걷어차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건 사람이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염치 문제다.

중국 사람들이 이런저런 공적, 사적인 문제를 ‘연줄’로 해결하는 걸 좋아한대서 ‘꽌시(關系)’라는 단어가 국제어가 되다시피 한 것은 다들 아는 일. ‘관(關)’은 ‘빗장지르기’란 뜻이고 ‘계(系)’는 ‘(실처럼) 잇다’는 뜻이다. 그러니, ‘꽌시’엔 ‘잘 아는 사람은 문 안으로 끌어들여 줄줄이 서로 엮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문을 걸어닫는다’는 뜻이 숨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꽌시’를 좋아하기로는 우리네가 중국 사람보다 한술 더 뜨지 않을까 싶다. 지연, 학연 따지기를 좋아해서 향우회나 동창회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나가는 게 바로 우리네가 아닌가.

‘꽌시’의 결정판이 바로 ‘고용 세습’일 테다. 제 직장이라고 해서 자식은 물론 조카, 처남, 처제까지 연줄을 동원해 줄줄이 밀어 넣겠다는 욕심이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도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우리 사회다. 직원 500명을 뽑으면서 면접점수 조작 등을 동원해 거의 전원을 부정 채용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이 터진 게 얼마 전의 일이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힘깨나 있는 자들이 압력을 가해 ‘금 안의 사람’을 줄줄이 밀어 넣은 사건 말이다. 그 사건 수사 과정에서조차 검찰 상부에서 갖가지 압력이 가해졌다고 젊은 여성 검사가 폭로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엔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에서 비정규 직원을, 무기 계약직으로,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직원의 친·인척에게 대거 혜택을 줬다는 거다. 해당자 1285명 가운데 기존 공사 직원의 친·인척이 112명이라는데 8.7%라면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인사처장이란 사람의 부인과 아들도 들어 있다는데, 명단에는 자기 아내와 자식의 이름은 쏙 뺐다고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 노조위원장의 아들도 포함됐다고 한다.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온 세상이 야단인 마당에 ‘신의 아들’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공기업에서 채용비리 의혹이 터졌으니 당연히 국민들이 분노할 밖에. 21세기의 신은 공기업의 인사처장님이나 노조위원장님이란 말일까. 야당은 국민적 분노를 등에 업고 강공 드라이브를 펴고 있다. 제대로 된 전수조사도 거치지 않았으니 친·인척이 어디 112명뿐이겠느냐, 그러니 국정조사를 해서 진상을 밝히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그들대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올바른 정책 방향이 아니냐, 이번에 대상이 된 직종은 대부분 노선 점검 등 취업자들의 선호도가 높지 않은 현장 기술직이다, 각각 따로 입사해 사내 결혼한 사람들도 명단에 포함된 만큼 숫자가 부풀려져 있다 따위.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있으니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2년 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던 열아홉 살의 외주업체 직원이 목숨을 잃은 후 현장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소리가 빗발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마당인데, 옥에 티가 있다고 너무 매를 때리는 게 아니냐는 항변일 터다. 하지만 이 판국에 그들이 길길이 뛰는 건 국민들의 눈으로는 적반하장이다. ‘일자리 도둑질’에 관한 한 국민들이 얼마나 예민한 줄 모른단 말인가. 좀 더 조사가 이뤄져야 ‘옥에 티’인지, ‘썩은 수박덩이’인지 확실히 밝혀지긴 하겠지만, 관련 자료를 제대로 내놓으라면 내놓고, 전수조사를 새로 하자면 수굿이 따르면 될 일이다. 정부 야당도 감사원에 맡겨 뒀으니 기다려 보자고만 할 게 아니라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서라도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응할 일이다.

따지고 보면 ‘특혜 채용’이 어디 서울교통공사 뿐일까. 지난해 330개 공공기관이 벌인 자체조사 결과로만 해도 2234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다. 상급자의 부정지시, 서류조작에 의한 부정채용 사례만도 수백 건이나 됐지 않았던가. 그 무렵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는데 사후 조치는 어찌 됐나 모르겠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이런 실정인데 민간 기업은 오죽 할까. 7, 8년 전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단협을 하면서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가 일자리를 물려받게 하자는 ‘고용 세습’을 아예 명문화하자고 나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지 않았나. 여론의 질타에 철회된 줄 알았더니만 아직까지도 바로 그 ‘현대판 음서제’가 횡행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나는 기가 질렸다. 올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사업장 15개에서 노사단체협약에 노조원 자녀 등에 대한 ‘우선채용·특별채용’이 명기돼 있다는 거다. 금호타이어, 현대로템, 현대자동차 등은 ‘정년퇴직자의 요청이 있을 시, 그 직계가족 우선 채용’ 따위의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다른 곳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건 고용정책기본법, 직업안정법 등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글쎄, 김정은 3대 세습에다, 재벌 세습도 모자라서 일자리까지 백주에 당당히 세습하는 걸까. 장관을 아비로 두면 자식도 장관이 되고 판검사를 아비로 두면 자식도 자동적으로 판검사가 돼야 한다는 걸까. 이 사업장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이 9곳, 한국노총 소속이 5곳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이 이렇게까지 타락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30여 년 전 그들의 선배는 군사정권의 노동운동 탄압에 맞서 미포조선소 골리앗에 올라가 투쟁하지 않았나. 부당해고를 당하고, 구사대의 몽둥이를 맞고 감옥행까지 마다 않으며 조직을 지켜낸 선배들이다. 그 희생 위에 올라탄 자들이 썩어 빠진 기득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수단으로 노조를 악용하고 있지 않은가. 후배들이 제 자식을 ‘무임승차’시켜 직장에 밀어 넣어도 탈이 없을 세상이나 만들어 주려고 그 옛날 그들의 선배들이 그 고난을 겪었을까. 취업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인 세상에서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정부는 왜 ‘노사 자율협약’이란 미명 아래 이런 불법을 방치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 불가다.

하고 보니, 얼마 전 부산에서도 공기업 취업비리가 터졌다. 부산항만공사로부터 항만 안전 관리를 위탁받은 부산항시설관리센터란 곳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지원자를 사후에 구제(?)해 면접장에 앉힌 뒤 높은 점수를 주는 수법으로 6명을 부당 채용했다고 한다. 이곳은 물론 부산항만공사, 부산항보안공사 등 관련 기관 직원의 자녀가 특혜를 봤다는 게 경찰 수사 결과다. 글쎄, 부산의 다른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 부산시도 손 놓고 있지 말고 차제에 산하 공기업에 대한 실태조사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구조적인 취업난 속에서 젊은이들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세상이다. 지금 서울 노량진 학원가나, 고시원에서 젊은이들이 컵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취직 공부하느라 시들어가고 있다. 당장 아들이 취업하지 못한 나만 해도 겉으론 내색 않아도 속이 타들어 간다. 공기업의 간부 한 사람 알지 못하고, 자기가 물러난 자리에 자식을 대신 꽂아 넣어 줄 ‘신의 직장’도 가지지 못한 무능한 아비들은 자식들에게 도대체 무슨 변명을 해야 할까.

요즘 고위공직자들이 자신의 좌우명이라며 즐겨 읊조리는 경구 가운데 ‘불환빈 환불균 (不患貧 患不均)’이란 게 있다. ‘백성의 가난함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란 뜻쯤 될 게다. 높은 분들은 이 경구를 과시용으로 사무실에 액자로 걸어두기만 할 게 아니라,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나 정신 차려 감시하고 챙겨야 할 일이다.

불경기로 취업 문 자체가 좁은 세상이라면 “어쩌겠나, 좋은 세상이 오겠지”하고 체념이라도 할 터이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에서 ‘취업 도둑질’이 횡행한다는 걸 알게 된 마당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문재인 정권이 할 일은 취업의 문을 넓히는 일만이 아니다. 저희들끼리만 문을 열어 주고 다른 사람에겐 문을 꽁꽁 닫아거는 세상, 금 밖의 사람을 밀어내면서 그들이 올라오려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세상을 혁파하는 일이 더 화급할 수도 있다. 공기업 취업비리 의혹 같은 게 자꾸 터지면 정권의 신뢰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이 정권 사람들이 명심하란 이야기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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